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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가난하고 힘들어도 나는 안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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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가난하고 힘들어도 나는 안울어"

입력
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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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의 나비 / 프란시스코 지메네스 지음ㆍ하정임 옮김 다른 발행ㆍ8,500원아무리 가난하고 고달파도 아이들은 자란다. 어른들이 근심에 싸여있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뛰놀고 웃는다. 물론 울기도 한다. 잘 알지는 못해도 어렴풋하게나마 삶의 버거운 짐을 느끼며 그 무게에 짓눌려 찡그리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멕시코계 미국 작가 프란시스코 지메네스의 소설 ‘프란시스코의 나비’의 주인공 판치토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미국으로 들어온 멕시코계 불법이민자 가족의 고단한 삶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성장기로, 작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1940년대 말, 멕시코의 작은 마을에서 살던 판치토 가족은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국경을 몰래 넘어 미국으로 간다. 하지만 단속을 피해, 일감을 찾아 떠도는 불법이민자의 삶은 고단하기만 하다. 하루 열 두 시간씩 일해도 살림은 피지 않는다. 남이 버린 음식과 물건으로 살아가는 힘겨운 나날을 버티는 힘은 가족 간의 따뜻한 사랑이다.

판치토는 외롭다. 영어를 하지 못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주 이사를 다녀서 친구 사귀기도 어렵다. 일하러 간 엄마, 아빠 대신 혼자 남아 젖먹이 동생에게 우유병을 물리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한겨울 목화 따는 일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자기 오줌을 받아 꽁꽁 언 손을 녹이는 모습은 가슴 아프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판치토는 어린애다운 순진함을 잃지 않고 꿋꿋이 자라며 자아와 주변사회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소설은 매우 사실적이어서 더욱 감동적이다. 돈이 없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들이 원하는 공 대신 겨우 사탕 한 봉지를 포장하며 눈물짓는 엄마, 그런 엄마에게 비록 싸구려이지만 정성껏 준비한 손수건을 선물하는 아빠, 유리병 속에서 자라던 애벌레가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에 자신을 겹쳐보는 판치토… 불법 이민자 가족의 힘겨운 삶과 그 속에서 자라는 어린 소년의 기쁨과 슬픔을 작가는 연민이나 감상을 배제한 채 그려내고 있다.

판치토 가족이 결국 단속반에 걸리는 것으로 끝나는 냉정한 결말은 삶의 차가운 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울하거나 슬프지는 않다. 실낱 같은 희망이 줄곧 깔려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호들갑을 떨거나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고, 용기를 내라고. 그런 은근함은 독자의 가슴에 따스한 훈김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

97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많은 상을 받았고, 미국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 들어있다. 이 소설을 구성하는 12개의 에피소드 중 크리스마스 장면과 판치토의 나비 이야기는 미국에서 따로 그림책으로도 나왔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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