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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63>에드워드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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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63>에드워드3세

입력
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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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년 11월13일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3세가 윈저에서 태어났다. 1377년 리치먼드에서 졸(卒). 에드워드3세의 집권은 두 차례의 반란을 통해 이뤄졌다. 첫 번째 반란은 아버지 에드워드2세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 반란은 어머니 이자벨에 대한 것이었다. 프랑스 왕녀 출신의 이자벨은 1325년 친정에서 규합한 반란군을 이끌고 와 군주로서 무능했던 남편을 굴복시킨 뒤 왕자에게로의 양위를 강제했다. 이자벨의 반란에 동참한 뒤 14세에 잉글랜드 왕이 된 에드워드3세는 어머니의 섭정에 휘둘려야 했지만, 성년이 되자마자 어머니의 정부 로저 모티머를 처형하고 어머니를 은퇴시킨 뒤 왕권 강화에 나섰다.유럽사에서 에드워드3세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의 백년전쟁을 시작한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4세가 남자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샤를4세의 생질이었던 에드워드3세는 자신의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으나, 프랑스 궁정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두 나라 사이에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근원적 이유는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 플랑드르를 비롯한 대륙의 몇몇 경제중심지에 대한 두 나라의 지배권 다툼이었다. 1337년 에드워드3세가 플랑드르에 대한 양모 공급을 중단하고 프랑스 왕 필리프6세가 잉글랜드 왕의 영토였던 가스코뉴 지방의 몰수를 선언하며 발발한 백년전쟁은 초기에 영국의 압도적 우위 속에 진행됐으나, 결국 프랑스의 승리로 끝났다.

백년전쟁 초기의 영국측 영웅은 에드워드3세의 맏아들 흑세자 에드워드였다. 그는 크레시 전투(1346), 칼레 전투(1349)에서 프랑스군을 대파했고, 푸아티에 전투(1356)에서는 프랑스 왕 장2세를 사로잡기까지 했다. 프랑스 전역과 스페인 북부 지역을 누비며 영국 중세기사도의 전설이 된 흑세자 에드워드는 그 유명한 가터 기사단의 첫 번째 영웅이기도 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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