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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사랑에서 '권위'를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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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사랑에서 '권위'를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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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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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탄생-새로운 사랑의 지형학/캐롤 길리건 지음·박상은 옮김 빗살무늬 발행·1만5,000원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나 무관심이 아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사랑이다. 사람들마다 정치적 입장, 사회적 위치에 따라 사랑의 정의(定義)가 다르고, 따라서 사랑의 정의(正義)가 다르다. 각자의 사랑이 경합한다. 물론, 지금 막 사랑이 끝나고 상처에 우는 이들은,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다’라고 말할 것이다.

구 근대철학의 전통에서 사랑이 끝났다는 것은 상실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랑의 종말은 사랑의 대상이었던 상대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일부였던 그/그녀와 연결이 끊어져 ‘나를 잃음’을 뜻한다. 캐롤 길리건의 언어로 말한다면, 사랑의 끝남은 고립됨, 관계의 단절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인 캐롤 길리건의 1982년작 ‘다른 목소리로-심리이론과 여성의 발달’(17개국 언어로 번역)은 심리학, 교육학, 여성학, 법학, 간호학, 신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걸쳐 ‘인간’의 개념을 바꾼 20세기 지성사에 가장 논쟁적인 명저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정신분석학을 재개념화 하는 그녀는 프로이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프로이드는, 아버지의 거세위협 때문에 어머니를 향한 사랑을 거두는 아들의 성장과정을 인간발달의 모델이라고 하였다. 아들의 리비도 극복과 어머니로부터 분리된 자아추구가 인류문명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길리건을 비롯한 여성주의자들은 다르게 해석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이 어머니를 버리고 아버지와 연대하는, 가부장제 입문의 통과의례라는 것이다. 가부장제사회의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는 어머니를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경쟁하는 상황, 즉 남성연대가 끊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니 에미 씨팔’이나 ‘퍽큐’ 같은 욕설은 모두 ‘어머니와 섹스하는 아들’이라는 뜻이다).

또한, 길리건은 어머니나 부모로부터의 분리가 발달이나 도덕적 성숙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타인과의 분리보다는 연결과 관계를 통해 성장한다. 우리는 모두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다. 독립적 자아, 초월적 자아는 근대 자본주의 제도의 이상일 뿐, 인간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길리건의 이론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질문을 근본적으로 바꾼 지적혁명이었다. 예를 들면, 기존의 질문방식이 "여성은 왜 남성과 같은 시민(노동자)이 되지 못했는가"라면, 길리건 이후의 질문은 "남성은 왜 여성과 같은 시민(노동자이면서 양육자)이 되지 못했는가"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관계의 희생이 가부장제의 조건임을 말해줄 뿐이다. 길리건의 최신작 ‘기쁨의 탄생’은, 이같은 ‘관계적 자아’의 시각에서 사랑과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이 책은 큐피드 신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셰익스피어의 비극들, 호손의 ‘주홍글씨’ ‘안네의 일기’ ‘영국인 환자’,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등 고대신화에서부터 최근의 탈식민주의 텍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재현에서 나타난 사랑, 관계, 권력을 분석한다.

자에 따르면 서구문명의 기원이나 건국신화의 이야기들은 모두 엄청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담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 라이오스 왕을 죽이고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하는데, 라이오스 왕이 어린소년을 성폭행했기 때문에 아폴로 신이 내린 형벌이었다. 아테네 민주주의 형성과정의 이야기는 더 끔찍하다. 아가멤논의 아버지 아트레우스는 자기 동생인 티에스테스가 아내와 도망치자, 잃어버린 남자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동생을 연회에 초대하여 그의 자녀들을 죽여서 만든 스튜를 대접한다.

이런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파괴와 잔인성으로 인한 인간의 정신적 외상은 아버지나 남편의 권위가 도전 받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다. 남성우위의 구조가 위협 받을 때 남자는 폭력으로 대응하는데, 권위를 잃은 남성들의 복수의 반복, 이것이 가부장제의 역사이다. 폭력은 내가 타인의 일부이고 타인은 나의 일부라는 인간의 존재조건을 부정할 때, 즉 타인과 자신을 극단적으로 분리할 때 일어난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자유의 적은 구조가 아니라 전제주의다. 흔히 남자답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 바깥에서 홀로 서는 능력을 말하며, 여자답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목소리를 내기 위해 관계를 무시하거나 관계를 위해 자기 목소리를 죽이는 것은, 둘 다 목소리와 관계의 상실을 가져온다. ‘기쁨의 탄생’은 국경, 계급, 언어, 종교, 피부색, 결혼의 장벽을 넘은 사랑도 결국은 남성성을 극복하지 못해 실패한다고 본다. 가부장제는 남성에게 명예와 사랑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관계성을 추구하는 것을 여성/약자의 윤리로 비하하여 여성에게 상처를 주고, 친밀성과 남성성을 대립시켜 남성들에게 고통을 준다. 남성다움이나 여성다움은 자기 보호막, 방어기제로 자신에게로 이를 수 없는 길이다.

이 책은 가부장제가 사랑의 적이라면, 사랑은 가부장제를 극복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균형을 잃는 것이 아니라, 얻는 일이다. 사랑을 하면 신체기능이 활발해지고, 감각이 예민해지며, 마음을 속이지 못하게 된다. 사랑은 본래 자유롭다. 사랑은 자유 안에서만 새로운 형태를 얻으며, 바람이나 물처럼 경계를 넘는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기존 유형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 안으로 들어선다. 이것이 바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미국에서도 격찬 받은 ‘기쁨의 탄생’은 인문학적 상상력과 통찰은 어떻게 가능한가의 전범을 보여주는 책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눈을 감아야 보인다. 새로운 지성은 주류의 관점, 지배 규범을 따르지 않을 때 가능하다. 길리건에게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는, 오히려 인식론적 특권인 것 같다. 그녀의 글은, 지성의 본질은 저항이면서 동시에 치유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기쁨의 탄생’은 내내 프쉬케(영혼)와 큐피드(사랑)의 사랑을 인용한다. 가능성으로 가득 찬 이 연인들의 딸 이름이 ‘기쁨(pleasure)’ 이고, 책의 제목이 되었다. 쉬우면서도 영성 넘치는 문장을 잘 살린, 유려한 우리말 번역이 돋보인다.

정희진 서강대강사·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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