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 논란, 이해찬 총리 발언파동 등을 거치면서 여권의 세 축인 당·정·청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당·정·청 협의회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조율이 이루어지는 정책 분야와는 달리 민감한 정치 현안에 있어서는 3자간에 사전 상의는 물론 사후에도 공동 대처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신뢰도 엷어진 분위기이며 공식협의기구나 채널도 없다. 그나마 가동되는 비공식 채널 역시 ‘코드'가 맞는 끼리끼리의 사적 만남에 그치고 있어 폭 넓게 의견을 수렴, 국면을 일거에 반전시키는 ‘통 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 파행을 초래했던 이 총리의 발언 파동이 그 대표적 예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의(謝意)를 표명한 이 총리에게 "수고했다"고 격려했지만 천정배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사과 시기가 너무 늦어 국회 일정을 14일이나 허비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반면 이 총리는 "당에서 하도 요구해 할 수 없이 유감표명을 했다"며 앙금을 드러냈다. 양측 비서진은 한때 전화도 안 할 정도로 얼굴을 붉혔다.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법안의 처리문제는 더욱 심각한 갈등을 안고 있다. 청와대와 이 총리측이 "당의 개혁작업이 지지 부진하다"고 불만스러워 하지만 이부영 당의장은 "산이 높으면 돌아가야 한다"며 속도 조절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1일에는 김근태 복지부 장관도 "정부가 가는 방향은 옳으나 국민에 대한 설득이 부족했다"며 자성의 뜻을 밝혔다. 행동으로 대립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각과 노선에서 이미 현격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천 대표측은 ‘회기 중 처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지만 청와대를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갖고 있다. 4대 개혁입법이 차질을 빚은 근본 원인이 지난 9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보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고 발언, 사회 저변의 불안심리를 자극한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과 이 총리의 발언 모두 당정분리를 표방한 참여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에 배치된다"며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개입은 여권 내 혼선만 가져올 뿐"이라고 꼬집었다.
386출신의 한 당직자조차 "노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선언한 취지는 좋지만 최소한의 교감조차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균열은 갈수록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 3월 전당대회를 겨냥한 중진들과 계파간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념과 노선의 차이에다 당내 주도권 다툼까지 겹칠 경우 회복하기 힘든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음울한 상황이 창당 1주년을 맞은 열린우리당의 요즘이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