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 펑, 펑.’ 지루할 것만 같은 11월의 한복판, 18일 0시가 되면 여기저기서 코르크 마개 따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해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와인축제 보졸레 누보의 시즌이 다가온 것. ●프랑스 부르고뉴 남쪽 보졸레 지방에서 햇포도로 만든 와인인 보졸레 누보는 시골처녀처럼 젊고 대중적인 축제의 와인.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에 세계적으로 동시에 판매된다. 가격도 다른 와인에 비해 저렴한 서민적인 와인으로 탐스러운 루비색에 상큼한 과일향이 매력. ●풍년이 있으면 흉년도 있다고 했던가! 지난해 풍부한 일조량으로 최고의 포도 수확을 거뒀다는 소식은 올해 전혀 들리지 않는다. 사실은 지난 8월 한달간 산지에 계속 비가 와서 염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대신 올해는 ‘9월 이후 예년보다 높았던 기온과 3주 동안 지속적으로 내리쬐었던 햇빛이 잘 익고 건강한 포도를 만들어냈다’는 홍보 문구가 타이틀을 장식한다. 그래서 12년 만에 알코올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다는 것. ●어쨌든 보졸레 누보는 포도주의 정통 입맛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와인 시즌의 개막을 말해 준다. 하절기는 와인 비수기이기 때문. 침체된 경기와 맞물려선지 호텔 그랜드볼룸에 수천 명이 모이는 큰 덩치의 축제는 없다. 한강유람선상에서 열리는 보졸레누보 축제와 와인바, 호텔 등에서 잔잔하게 벌어지는 행사들은 여전히 축제 기분을 띄워준다.
■ 이런 와인바 어때요?
꼭 보졸레 누보가 아니더라도 올 겨울 와인바를 찾는 발걸음도 덩달아 바빠질 전망이다. 그동안 와인바는 조용하면서도 격식을 갖춰 술을 마시는 공간으로 인식돼 왔지만 새로운 컨셉을 갖춘 뉴에이지 와인바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어서다. 와인전문잡지 와이니즈(www.winies.com) 김정미 사장의 도움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와인바들을 찾아가 봤다.
◆ WR바 (02)3442-2176 청담초등학교 정문앞
바닥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밝은 조명에 경쾌한 음악, 신나는 분위기에 대화와 웃음이 흘러 나오는 와인바. 차분하고 약간 어두운 듯한 종전의 와인바와는 전혀 이미지를 달리 한다. 이름에서 WR의 W는 화이트, R은 레드 와인을 각각 뜻한다. 실내 한 가운데 무쇠로 만든 커다란 와인셀러가 설치돼 두개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한쪽은 화이트의 의미처럼 밝다. 뉴욕의 유명바인 허드슨바를 벤치마킹, 바닥에 밝은 빛이 나는 조명이 깔리고 젊은 감각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 있다. 반대쪽은 레드의 진한 분위기를 내는 섹션. 주인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선수 출신인 김상철(30)씨. 압구정동의 스시레스토랑 ‘알마끼’, 샌드위치 브랜드 ‘레인보 서브’를 운영해 오고 이달 사케바 ‘콩’과 이탈리아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지금 외식 컨설턴트와 파티플래너로 변신,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누구나 쉽게 올 수 있는 캐주얼 와인바를 꾸민다는 것이 그의 컨셉. 3만원대 저가 와인부터 200만원이 넘는 와인까지 500여종을 폭 넓게 갖췄다. 힐튼호텔 출신의 최은경 매니저가 호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 크로스비 (02)576-7754 양재동 일동제약 4거리 건너편 골목
밤길을 지나다 문득 실내에서 흘러 나오는 은은한 조명 빛에 이끌려 들어가고만 싶은 곳. 공원 앞에 자리잡은 데다 밤에는 앞 도로의 차량 통행도 뜸해 한적한 분위기가 제법 매력적이다. 실내 테이블은 단 4개, 테라스에도 4개의 테이블만 갖춘 아담한 규모. 실내에는 특별한 장식물이나 조형물을 설치하지 않아 인테리어라고 할 것도 없이 편안하고 산뜻한 분위기다. 벽에는 오래된 LP 수백 장이 꼽혀 있는데 이 LP를 직접 튼다. 음악 장르는 대부분 재즈와 클래식. 주인은 외식컨설턴트와 바텐더 출신인 김옥재씨. ‘손님과 같이 늙어가면서(?) 세월을 말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어 3년 전 오픈했다. 와인 뿐 아니라 위스키나 칵테일도 마실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와인은 3만 원부터 150여 종. 나초나 치즈 등 안주류 1만5,000원.
◆ 링가롱가 (02)730-3323 삼청동
따뜻한 분위기에서 와인을 값싸게 마실 수 있는 곳. 3만 원대 중저가 와인들이 특히 많다. 링가롱가는 뉴질랜드 원주민 역사를 기록한 책 이름. 일부러 유럽적이지 않은 이름을 붙였다.
목공예가 출신인 주인 강지형씨가 직접 실내외 인테리어를 꾸미고 자신이 만든 소품들로 장식했다. 홀 한가운데 꽉 차게 들어선 ‘ㄷ’자 모양의 바가 인상적. 오래된 나무라 대패질도 먹히지 않는다는 나무를 사용,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천장이 낮은 실내는 황금빛, 실외는 군청색 칠이 돋보인다. 산사나이처럼 턱수염과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강씨는 원래 인사동에서 찻집 ‘나의 남편은 나무꾼’과 ‘모깃불에 달 그스릴라’를 운영했던 이. 매실이나 솔잎차도 정성스럽게 직접 담근 것들만 내놓는다.
◆ 두도 (02)517-1386 청담동 카페 고센 앞 스타빌딩 3층
베트남어로 ‘유혹’이란 뜻의 상호. 룰라의 원년멤버로도 유명한 인기 가수 김지현씨가 그녀만의 ‘유혹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넓은 실내 공간에 칸막이 하나 없이 테이블이 모두 확 트여 있는 것이 대부분의 와인바와는 달라 보인다. 앤티크하면서도 모던한 인테리어가 은은하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바 보다는 테이블 위주의 와인바. ‘ㄱ’자 형태의 길고도 넓은 테라스는 압권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크기다. 겨울에도 천막 지붕을 설치하고 스토브를 켠 채로 와인을 마실 수 있다. 실내와 테라스는 통유리로 구분돼 있어 실내에서도 전망이 시원하다. 테이블 또한 다닥다닥 붙어 있기 보다는 널찍이 놓여져 있다. 와인은 4만원대부터 200여 가지 구비. 나초나 치즈 등 안주는 2만원선. 손님을 맞는 주인 김지현씨를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다.
◆ 더와인바 (02)3443-3300 청담동 갤러리아 명품관 건너편 골목
와인은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는 지하 셀러(창고)가 맛을 좌우한다. 그래서 와인셀러는 신선한 와인 맛의 뿌리이자 감춰진 공간이기도 하다. 더와인바에 앉아 있으면 흡사 와인셀러에 앉아 있는 듯 하다. 화려하다거나 특별한 인테리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단순함이 이 곳의 매력. 콘크리트만 쳐진 듯 회색벽에 희미한 조명은 꺄브(샤또의 지하저장창고) 분위기를 그대로 낸다. 문을 연지 3년이 넘었지만 꾸준히 골수팬들을 확보하고 있을 만큼 독특함을 그대로 고수한다. 20대부터 40대까지 고객 연령층도 고른 편. 5만원대부터 200여가지의 와인을 구비하고 있다. 치즈 모듬 등 안주류는 2만 원부터. 그랜드힐튼호텔과 퓨전 레스토랑 ‘시안’에서 경력을 쌓은 상병돈 지배인이 정겹게 손님들을 맞는다.
◆ 베레종 (02)552-8016 대치동 포스코4거리
와인 칼럼 기고가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건축가 이상황씨가 지난달 오픈한 와인문화공간이다. 바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각종 문화행사나 세미나도 열 수 있는 종합문화 공간을 지향한다. 건축가답게 감각적이고도 독특한 실내 분위기를 냈다. 밝은 색상의 원목 테이블에 실내 조명도 밝은 편. 와인은 색을 보고 먼저 마시는 주종이라고 일부러 밝게 했다. 의자와 테이블도 낮고 아담한 편, 조금은 여성적이다. 깨끗하고 깔끔한 실내공간을 지향해 실내는 금연이다. 빌딩 5층에 있는데 겉에서 보면 간판도 보이지 않고, 문에도 아무런 표시가 없다. 그래서 사무실에 잘못 들어왔나 싶어 돌아 가는 경우도 왕왕 생길 정도. 이씨의 부인 배혜정씨는 주방에서 직접 정성스럽게 조리한 음식들을 내놓는다. 브루고뉴의 꼬꼬뱅, 알자스의 슈크루트 등 와인 산지의 음식들이 주메뉴. 벽장처럼 만든 와인셀러에 와인 200여 종을 보관한다.
/글ㆍ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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