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입이 무서워졌다. 이런저런 자리에서 쏟아내는 성직자들의 말에 가시가 돋아있다. 상대에 대한 비판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누구보다 현실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고 있기에 그들의 말은 ‘양심’이고 ‘순수’였다. 모든 사람들의 입에 재갈이 물려있던 저 암울한 군사독재시절, 그들의 용기 있는 한마디는 그래도 이 땅에 정의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었고, 독재자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고, 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제시했기에 극단적 갈등으로 사회가 신음하는 지금, 그들의 얘기에 더욱 귀 기울이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그들이 지금 주제가 무엇이든, 자리의 성격이 어떻든, 현실을 놓고 자기 확신에 가득찬 주장들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9일 명동성당에서 있은 서울가톨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하상신앙대학’ 강의에서 정의채 신부가 그랬고, 두 달 전 김수환 추기경이 같은 자리에서 그랬다. 한달 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이 된 함세웅 신부가 평화방송 라디오에 나와 개신교 보수교단을 맹비난했다.
그들의 세상 보는 혜안과 양심과 용기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오랜 세월 사심 없이 살아온 그들의 ‘나라와 백성의 걱정’과 ‘위정자를 향한 꾸짖음’은 모두 맞을 것이다. 정의채 신부의 정부 4대 개혁법안에 대한 비판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 지금의 국정 주체인 386세대에 대한 분석, 개혁에 대한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김 추기경의 보안법폐지 반대도 호소력이 있으며, 함 신부의 정반대 주장도 타당해 보인다.
무서운 것은 이런 주장들을 위해 그들이 선택한 칼날처럼 섬뜩하고 경멸이 담긴 언어들이다. ‘현대인을 향한 영혼의 울림’이란 경건한 이름으로 열리고 있는 하상신앙대학 강의에서 정 신부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지난날 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으며, 이승만 독재정부 말기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가 나오던 시절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또 집권 386세대를 향해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고, 데모에만 전력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경험도 없어 국가는 구한말기보다 더 어려운 국난을 맞게 됐다"고 비판을 했다. ‘무지와 만용, 권력욕의 소산, 수구 중 수구, 홍위병’이라는 말도 했다.
그 반대 쪽은 어떤가. 함 신부 역시 보수 성향 개신교계에다 대고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미숙, 무지"라고 폄하했고, 호인수 신부(우리신학연구소장)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하는 김수환 추기경을 "정치인들처럼 언론에 거론되지 않으면 심심한가 봅니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발언도 그런 차원 같아요"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런 말속에서 미움 말고 무엇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더욱 사악한 것은 성직자들까지 편가르기로 끌어들이는 언론들이다. 구미에 맞는 말만 앞뒤 다 자르고, 과장해서는 ‘거봐라’ 라는 식으로 보도하는 일부 보수신문.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다고 인격모독까지 서슴지 않는 소위 개혁을 지지한다는 언론들. 그들도 어김없이 입으로는 화합과 용서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화합과 용서는 이해와 양보가 아니다. 상대의 ‘항복’일 뿐이다.
사회가 갈갈이 찢기고, 사는 것이 팍팍한 이 시대, 성직자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누가 선하고 악하고, 무엇이 옳고 그르고를 가려주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나와 생각과 가치가 다른 ‘이단아’를 속 시원히 능멸하고, 그들을 추방하는데 앞장서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먼저 남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화합의 지혜’를 얻고, 달라이 라마가 한국인들에게 한 충고처럼 ‘용서의 실천’을 보고 싶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원수’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야 하는 성직자가 아닌가.
이대현 문화부장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