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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화재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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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문화재 도둑

입력
2004.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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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4세기 고려 불화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가 176만달러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당시 국제미술시장에서 거래된 한국 고미술품으로는 사상 최고가 기록이었다. 화려하고 섬세한 필치를 자랑하는 수월관음도는 고려 불화의 정수로 여겨져 왔지만 그때까지 국내에서는 한 점도 확인되지 않아 관심이 더했다. 7년이 지난 98년 10월 같은 14세기 수월관음도 하나가 보물 제1286호로 지정됐다. 국내 최초의 수월관음도로 보물 지정에 앞서 3년 여의 세심한 손질을 거쳐야 했다.■ 실은 그해 6월 수월관음도 하나가 인사동에 나타났다. 사흘 전 일본 오사카(大阪) 미나미가와치(南河內)군 에이후쿠지(睿福寺)에서 도둑맞은 것이었다. 국내 2호로서 충분히 보물 이상의 문화재 지정을 받을 만했지만 이내 행방이 묘연해졌다. 당시 에이후쿠지와 일본 언론의 태도에서 적잖은 놀라움을 느껴야 했다. 도난 사실은 지방지 한 귀퉁이를 장식하는 데 그쳤고, 에이후쿠지도 수월관음도보다 함께 잃어버린 다른 고미술품에 애착을 보였다. 알고 보니 일본에는 200점 정도의 고려 수월관음도가 있었다.

■ 일본에서 고려 불화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 등을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무속인(55) 등이 "약탈당한 문화재를 되찾기로 결심했다"고 ‘애국적 동기’를 거론했다. 훔친 문화재를 일본에서 팔려고 했고, 국내에서도 거액에 넘긴 점에서 빛이 바랬지만 국민 감정에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 사찰이 "15세기에 조선 승려가 가져 온 것"이라고 밝힌 아미타삼존상은 일단 젖혀 두더라도 6년 만에 이들이 훔친 것으로 드러난 에이후쿠지의 수월관음도 등에서는 약탈의 이력을 얼마든지 더듬을 수 있다.

■ 그래서인지 이들의 도둑질을 국내의 문화재 절도와 달리 보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국내의 ‘일감’이 사라지자 고미술품이 허술하게 보관된 일본의 시골 사찰이 표적이 됐을 뿐이다. 더욱이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진 수월관음도의 예처럼 도난 문화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문화재는 국민 다수가 접하면서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느낄 때 제 빛을 발한다. 꼭꼭 숨겨 두거나, 창고에서 먼지를 맞히고 있다면 장롱 속의 금송아지와 무엇이 다를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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