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가 9일 국회 파행에 대해 사의(謝意)표명을 한 데는 열린우리당의 전방위 압박이 결정적 동인이 됐다.파행 장기화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 여론에도 버티던 이 총리가 고집을 꺾은 것은 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은 물론 당의 원로인 김원기 국회의장까지 나섰기 때문이다. 이 총리로서도 아군의 압력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 총리의 작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날 김 의장의 유감 표명 종용이었다. 김 의장의 당내 비중이나 오랜 인간관계를 감안할 때 이 총리가 김 의장의 권유를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김 의장의 핵심 측근은 "의장의 권유를 받은 시점에 이미 총리는 사의 표명 결심을 했다고 보면 된다"며 이 총리의 면을 세워주었다.
천정배 원내대표의 권유이자 압박도 한 몫 했다. 천 대표는 이날 낮 "의총 직후 이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당의 결의 사항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천 대표는 간접적인 경로로 의사를 전했던 그 동안의 방식과는 달리 직접 연락을 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이 총리로서는 압박감이 달랐을 법 하다.
천 대표의 권유가 있은 직후 이 총리는 문안 작성에 들어갔다. 참모들과 회의 끝에 문안을 만든 이 총리는 오후 3시께 천 대표에게 직접 인편으로 밀봉한 사의 문안을 보냈다. 당의 뜻을 존중하고 긴밀히 상의하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당 원내대표단은 곧바로 회의를 열고, "더하거나 뺄 것 없이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내 핵심관계자는 "문안에 대해 한 글자도 수정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며 "오히려 이 총리가 너무 과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총리가 이날 직접 나와 사의 표명을 하지 않고 성명서만 낸 것에 대해서는 "끝까지 사의 표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총리실 관계자는"당초 이 총리는 국회에 출석해 의견을 밝히는 형식을 선호했지만 그게 불가능해지자 성명서 배포로 방침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파행 사태로 인해 당 지도부와 이 총리간 갈등설이 계속 불거지는 것도 이 총리의 결심을 재촉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총리로서는 파행이 지속될 경우 여권 내부의 분열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했다는 전언이다.
정기국회 회기가 한달 밖에 남지 않아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일정이 촉박해진 데다 12일 노무현 대통령의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출국 전에 파행사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겠다는 부담도 이 총리를 압박한 것 같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