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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 경북 의성 사촌 가로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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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 / 경북 의성 사촌 가로숲

입력
2004.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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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물이 몰려 정승 나는 터"비온 후 쑤(숲)의 시냇물이 3일 이상 흐르고 모기가 들끓으면 마을의 기가 다하였으니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선조들이 일러준 숲에는 지금까지 큰비가 온 후에도 몇 날씩 물이 흘러내린 적이 없다. 경북 의성군 사촌에 있는 ‘가로숲’ 이야기다. 낙동강 지류인 미천(眉川) 북쪽에 넓은 들판이 동서로 길게 놓여있는 사촌은 들판 동쪽 산 밑에 있다. 이 숲이 없다면 서쪽이 트이게 되어 바람의 영향을 많이 입게 된다. 물길이 짧고 모래가 많아 비가 오면 많은 물이 한꺼번에 흐르고 금방 땅속으로 스며들기 마련이어서, 물길도 보호하고 바람도 막을 숲이 필요했던 것이다.

뒷산에서 시작해 마을 서쪽을 흐르는 물길의 둑에 느티나무와 상수리로 우거진 이 숲은 들판을 ‘가로질러’ 있어 ‘가로숲’이라 하며 서쪽에 있다 하여 서림(西林)으로도 불린다. 길이가 800m에 이르는 이 숲은 오랫동안 왜가리의 서식지였다. 그래서 사람이 만든 숲이지만 천연기념물(405호)로 지정되어 있다.

1392년 김자첨(金子瞻)이 이주하면서 중국의 사진(沙眞)을 본 따서 사촌이라 불렀고 숲도 이때 만들어졌다. 사방의 산과 물이 이곳으로 몰려들어 산수가 밝고 맑아서 장수하는 이가 많고, 3명의 정승이 탄생할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신라시대 나정승(羅政丞)이 살았다는 전설과 함께 그의 묘라고 전해지는 오래된 무덤이 있어 천년역사를 짐작케 한다. 미천 절벽 위에는 유성룡의 외할아버지 송은(松隱) 김광수의 영귀정(詠歸亭)이 산수화처럼 자리 잡고 있다. 1542년 이곳에서 태어난 두 번째 정승 서해 유성룡을 비롯하여, 50여명이 대·소과에 급제하는 등 선비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마을터는 ‘외손이 잘되는 터’여서 딸들이 해산하러 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만삭의 유성룡 어머니도 친정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가로숲’에서 해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향토사가 김창회씨는 "부모가 그럴 수는 없고, 단지 유성룡만이 허락되어 큰 인물이 되었다는 의미의 이야기일 것"이라며 "아직 세 번째 정승이 태어날 기회가 있다"고 웃는다.

오래 전부터 왜가리가 서식했던 이 숲에는 최근 다른 서식지가 줄어든 탓에 엄청난 수의 왜가리가 몰려오게 되었다. 바닥 자갈은 배설물과 먹다 남은 물고기, 뱀 등으로 덮이고, 나무들이 말라죽고 풀 한 포기 살기 어렵게 되었다. 주민들은 ‘길조이므로 그대로 둘 것인지’, ‘사람이 살기 힘들면 길조도 소용없지 않은가’로 고민했고, 결국 2년 전 ‘시끄러운 소리’를 내 왜가리들을 인근 산으로 옮겼다.

숲의 물길은 흙이 많이 쌓이기 때문에 자주 손질하여야 했다. 집성촌 시절에는 1년에 한번씩 마을 어른의 ‘명’으로 인근 10리의 사람들이 모여 흙을 걷고 둑과 숲을 손질했다. 최근에는 사람이 없어 방치됐고 비만 오면 둑이 터지곤 했다. 그러다가 향토사가 김창회씨와 의성군의 노력에 힘입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후 바닥을 손질하고 둑에는 옛날처럼 돌담을 복원하고 어린 나무들을 심었다.

지금 가로숲에는 20년 전 심었던 젊은 느티나무들이 600년을 사촌과 함께한 고목들 사이에서 건강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아래에 피나무를 비롯하여 막 돋아난 어린 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튼튼해진 가로숲을 바람막이 삼아 들판은 사과밭으로 덮여있다.

권진오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alp96jk@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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