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시작된 전국공무원노조의 총파업 찬반투표가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투표를 강행하려던 일부 지부에서는 경찰과 노조원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경찰은 이날 207곳의 전국 전공노 지부 중 투표가 예상되는 175개 지부에 9,418명의 경찰력을 투입하고 투표를 강행한 55개 지부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을 벌여 투표를 저지했다.
8일 사전 방문투표에 이어 이날 투표를 재개한 서울 구로구지부에서는 경찰이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투표를 중지시키고 노조 간부 등 10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노조원 1명이 강제연행 후 경찰서에서 옷을 모두 벗어 던지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서울 강동구, 부산 강서구지부 등에서는 비노조 공무원들이 노조원들의 투표참여를 막아 투표가 저지되는 등 지자체와 전공노의 충돌도 이어졌다.
전공노의 투표를 지원하기 위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관련단체 관계자들이 곳곳의 지부를 방문, 경찰의 원천 봉쇄에 대항했으며 경남 진주시 등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서를 방문, 노조원 연행에 항의했다. 민노당 유선희, 김종철 최고위원은 경찰의 압수수색에 저항하다 각각 서울 마포경찰서와 성북경찰서로 연행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출신인 이갑용(민노당)씨가 구청장으로 있는 울산 동구지부는 기습적으로 투표를 실시, 80% 이상의 조합원이 투표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구청장은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하지 않고 15분 만에 투표를 끝내도록 해 경찰을 당혹케 했다.
대구 동구지부 등 일부에서는 인터넷 투표를 검토하는 등 경찰의 투표 원천봉쇄를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다. 경남 함안군지부는 미리 택배를 이용해 투표용지를 인근 의령군에서 함안군청으로 발송하는 방법을 동원했으나 이를 사전에 파악한 경찰에 의해 이날 오전 택배회사 사무실에서 투표용지 모두를 압수 당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전공노에 대한 여론이 매우 악화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정부측에 전공노와의 대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전공노에 가입하지 않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공무원직장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의 책임은 대화를 기피한 정부에 있다"며 "정부는 파업을 방지하기 위해 즉각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민노총 총파업 파업요건 논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입법안 폐지 등 요구안을 내걸고 전국 총파업 돌입 여부에 대한 찬반투표를 벌인 결과, 투표율이 절반을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나 파업 추진에 차질이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전체 조합원 59만5,2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에서 51.3%(30만5,838명)가 참가해 이 가운데 67.9%(20만7,661명)가 파업에 찬성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9일 밝혔다. 재적조합원 대비 찬성률은 35%에 지나지 않아 현행법(재적 과반수 이상 찬성)을 적용할 경우 파업결의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민주노총의 이번 총파업은 정치파업으로 불법"이라며 "파업찬성률만 보더라도 현행법상의 파업요건에 미달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수봉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개별 기업의 파업 여부를 규정하는 현행법이 총연맹의 대정부 상대 단체행동 요건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파업 찬반투표 사실상 무산
9일 국가 비상사태를 방불케 하는 공권력의 총동원 속에 전국공무원노조의 총파업 찬반투표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전공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공노는 "투표가 무산되더라도 15일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파업찬반투표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된 만큼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부의 초강경 대응에 맞서 무더기 사법처리와 대량 해직 등을 감수하면서 과연 실질적인 총파업을 벌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이같이 분석하는 이유는 이번 파업찬반투표를 통해 전공노의 투쟁력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8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강공에 밀려 경남 통영시 등 일부 지부가 투표를 철회한데 이어 투표일인 이날도 4분의 1에 달하는 지부가 투표를 포기하고 240여명의 노조간부가 사퇴했다.
파업찬반투표를 계기로 지도부가 수배 또는 검거되면서 구심점이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총파업 돌입에는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강경 일변도의 지도부에 대한 반발로 조직 자체가 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생활고에 죽을 판인데 철밥통이 무슨 파업이냐"는 식의 따가운 시선이 팽배해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부담 없이 강경대응을 선택했고 공무원들은 더욱 위축됐다. 부산 남구지부 이두호 지부장이 8일 사퇴하면서 "작금의 현실은 투쟁구호와 100억원의 파업기금 외에 국민의 무심한 눈길뿐"이라고 말한 것은 전공노가 처한 상황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전공노가 파업찬반투표 무산을 만회하기 위해 더 강력히 나와 총파업까지 벌일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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