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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부시와 더불어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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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워치] 부시와 더불어 사는 지혜

입력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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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낙담한 미국 청년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서 권총 자살했다고 한다. 자살 동기란 게 원래 과장되거나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시 반대에 앞장선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가 웹 사이트에 ‘그래도 자살해선 안 되는 17가지 이유’란 글을 올렸다는 소식과 어울려, 부시 재선에 절망한 미국인도 그만큼 많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이에 앞서 부시에 비판적인 유럽 언론은 유럽사회가 심장마비 쇼크를 거쳐 집단 우울증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언론 표현을 곧이 곧 대로 들을 것은 아니지만, 동병상련의 동지가 많은 것을 위안 삼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상한 마음을 그렇게라도 쓰다듬은 다음에 할 일은 앞날을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이다.

미국 대선이후 쏟아진 유럽 언론의 논평가운데 언뜻 상식적이면서도 눈에 띄는 것이 있다. 케리에 대한 기대가 일장춘몽으로 끝난 마당에는 부시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는 충고다. 미국의 일방주의 대외행보에 눌려 왜소해진 것이 불만이던 유럽이 쉽게 자포자기한 듯 비치지만, 미국에 정면으로 맞설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적 선택을 권고하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미국의 행보에 나라의 운명이 갈릴만한 절박한 이해는 없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상식을 얘기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처지가 다른 우리로서는 부시와 더불어 사는 지혜라는 말이 우울증의 특효약 처방처럼 느껴지는 점이 있다.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현명한 것인지는 오리무중인 현실이다. 정부와 학계의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나름대로 권위 있는 분석과 전망을 내놓지만, 대개 미국의 대외전략의 근본은 건드리지 않은 채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만으로 앞날을 전망하고 대응책을 논한다. 이를테면 고질병이 더칠 것을 불안해 하는 환자에게 막연히 예상 가능한 증세에 따른 대증요법만을 얘기하는 형국이다.

우리사회가 무엇보다 관심 갖는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진단은 대체로 세 갈래다. 하나는 부시 대통령이 일방주의에 대한 국제적 반발과 이라크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타협적 자세로 돌아설 것이란 예상이다. 이른바 학습효과가 북한 핵 대응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다. 두 번째는 지난 실책에 대한 반성이 아니더라도, 재선 대통령의 여유와 역사적 평가에 대한 고려가 유연한 정책을 택하게 할 것이란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진단은 비관적이다. 안보우선 대외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받은 부시 대통령은 한층 강경하게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밀어 붙일 것이란 전망이다. 이 우울한 관측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이런 분석은 북한 핵 문제에 관한 미국의 기본전략 또는 전략적 이해를 애써 무시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거나 오히려 지연시키려 한다는 객관적 분석과는 모두 동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 질서변화를 통제하기 위해 일부러 북핵 문제를 부각시켜 끌고 가려 한다는 분석은 엉뚱한 게 아니다. 북핵 특사를 지낸 찰스 프리처드도 북한과의 핵 대치가 미국으로서는 수십 년 만에 이룬 가장 바람직한 구도로 여기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인식이라고 지적한다.

북한도 기존질서의 변화를 막는 미국과의 대치를 마다할 리 없고, 부시의 재선 또한 반길 것이란 분석이 있다. 변방의 궤변이 아니다. 민주당 쪽인 브루킹스 연구소가 대선 직후 마련한 세미나에서 나온 진단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미국과 북한이 나름대로 즐기는 핵 게임에 우리만 안절부절못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당장 미국이 북핵 문제에 관해 강경책을 취하더라도 의연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다. 그 것이 우리 사회가 부시와 더불어 사는 지혜일 수 있는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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