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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59> 제국 水晶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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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59> 제국 水晶의 밤

입력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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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1월9일은 나치시대의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 사냥이 본격화한 날이다. 이 날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독일의 거의 모든 도시에서 유대인 상점과 가옥, 시나고그(유대교회당)가 습격을 받았다. 제국 수정의 밤(Reichkristallnacht)이라고 불리는 이 날 난동으로 독일 전역에서 유대인 91명이 학살되고 유대인 상점 7,500여 곳이 파괴되고 시나고그 400여 군데가 불에 탔다.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적 해결'이 공식적으로 시동을 건 것이다.독일 유대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이 밤에 ‘수정의 밤'이라는 우아한 이름이 붙은 것이 얄궂다. 명명의 유래가 확실치는 않지만, 유대인 가게와 교회당에서 깨져 나온 유리 조각들이 수정처럼 빛났던 탓에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주장이 그럴 듯하게 퍼져있다. 제국 수정의 밤의 빌미가 된 것은 이틀 전인 11월7일 파리에서 일어난 독일 외교관 피살 사건이었다. 이 날 파리 주재 독일 대사관에 근무하는 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가 헤르셸 그린스츠판이라는 유대인 청년에게 살해됐는데, 이 소식이 전해지며 독일 전역에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휘몰아친 것이다.

제국 수정의 밤 이후 독일을 빠져나가는 유대인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격앙된 독일인들의 자발적 난동이라는 형태를 띠었던 제국 수정의 밤에 독일 정부가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유대인들이 독일을 떠나주기 바랐던 나치 정권이 간접적으로나마 이 난동을 방조했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수정주의 사학자들 일부는 파리의 총격 사건과 제국 수정의 밤 배후에 유대인 그룹이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독일 사회의 반유대주의를 두드러지게 만들어 독일의 잠재적 적국에서 반유대주의를 누그러뜨리고, 팔레스타인을 관할하고 있던 영국으로 하여금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제도적으로 격려하게 하기 위해 벌인 일이라는 주장이다. 글쎄.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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