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는 공간을 탐구한다. 2차원 평면이든, 3차원 입체든 그들의 탐구 덕분에 새로운 공간 해석방법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 대표적 예가 르네상스시대의 원근법 발견. 지금은 원근법이 시각을 구성하는 보편적 법칙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충격적으로 신선한 공간 해석 법칙이었다. 요즘 미술작가들에게서도 ‘원근법’에 비견할 정도로 독창적인 공간해석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가나아트센터에서 5일 시작한 ‘공간유희 인도어&아웃도어’전은 요즘 작가들의 독창적이고 다양한 공간해석을 체험하도록 기획된 전시다. 박은선 황인기 이동재 황혜선은 회화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독특한 소재와 기법으로 공간을 빚어내고, 박충흠 박선기의 입체는 단순히 작품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공간을 체험토록 한다.
선테이프로 그림을 그리는 박은선(42)은 가늘고 정교한 선으로 공간의 깊이와 입체감을 능숙하게 표현, 평면의 회화를 살아있는 3차원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다. 여기에 거울, 홀로그램스티커 등을 부착해 의외의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이번에는 벽그림 ‘이중존재공간’과 불이 켜지면 사각 틀속에 가둔 이미지가 드러나는 라이트박스 작품들을 소개한다.
스스로 ‘땜쟁이’라고 말하는 조각가 박충흠(58)은 수많은 구리조각을 땜질해 대형 구, 삼각뿔 등의 형상을 만든다. 박충흠 조각의 특징은 이어 붙인 구리조각들 틈새로 빛이 넘나들며 작품 자체와 공간이 상호 소통한다는 점이다. 작품 한가운데 놓인 조명등의 불빛이 구리조각 이음매 틈으로 빠져 나와 사방 벽에 어른거리며 빛과 그림자를 만드는데, 그 공간이 마치 별이 가득한 우주처럼 신비롭다.
박선기(38)는 숯을 낚시줄에 꿰어 천장에 매달아 성전 기둥이나 창문, 계단 같은 모양을 빚어낸다. 숯을 꿴 낚시줄 하나는 왜소하고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것들이 모여 공간을 채우면 미니멀리즘적 이미지의 흑백공간이 태어난다.
황인기(53)와 이동재(31)의 회화는 색다른 재료실험을 통해 평면에 입체감을 불어넣는다. 황인기는 레고블록, 실리콘방울, 크리스털알갱이와 같은 현대적 재료로 우리 전통의 산수화를 계승하는 독특한 작가.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인왕제색도’를 각각 레고블록과 크리스털알갱이로 재현했다.
물감이 아니라 쌀로 그린 그림을 선보여온 이동재(31)는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불두, 반 고흐, 아인슈타인, 은 비너스, 금 불두를 내놓는다. 그에게 쌀 낱알은 캔버스 위에서 이미지를 구현하는 하나의 점. 쌀의 밀도를 달리해 인물 얼굴의 윤곽을 표현한다. 그리고 황혜선(35)은 유리판에 실크스크린기법을 활용해 단순한 선으로 의자 따위의 사물을 그리고, 그런 유리판을 여러 겹 겹쳐 회화적 평면을 3차원으로 확장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갤러리 김미라 수석큐레이터는 "점, 선, 면의 전통적 공간표현에서 벗어나 작품의 빈 틈을 파고 들어 상상의 여백을 남기는 공간, 조각과 빛을 담은 커다란 캔버스로서 공간을 체험하며 관객들은 예술의 유희를 경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5일까지. (02)720-1020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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