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제5차 전국 입양가족대회’가 열린 서울 서초동의 한 교회. 한쪽 팔만으로 트럼펫을 든 최정원(15)양과 자기 몸집의 몇 배나 되는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은 동생 최현빈(7)양이 ‘어머니 은혜’ 연주를 마치자 전국에서 모인 입양가족 1,000여명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최용식(41·회사원), 박순희(42·여)씨 부부의 금지옥엽 같은 외동딸 정원양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은 다섯 살 때인 1994년 10월. 친구와 길을 건너다 대형 트럭에 치여 1년 가까이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한쪽 팔을 잃고 다리마저 저는 2급 지체장애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다리의 성장점이 망가져 방학 때마다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해야 했다.
몸이 불편한 까닭에 친구가 많지 않았던 정원이는 박씨에게 늘 "함께 놀아 줄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랐다. 그러나 박씨는 정원이를 출산할 때 심한 하혈로 자궁절제수술을 받은 터라 출산이 불가능했다. 결국 남편과 상의 끝에 99년 5월 생후 40일의 현빈이를 입양했다.
현빈이가 들어오면서 정원이의 성격은 밝아졌다. 크면서 가끔씩은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둘은 서로를 친자매처럼 아끼고 좋아했고, 정원이는 컴퓨터를 배워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동생의 이야기를 ‘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정원이는 한 교포 가정의 초청으로 재작년부터 장애인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뉴질랜드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이번에 멋지게 연주한 트럼펫도 현지 학교에서 배운 솜씨다. 어머니 박씨는 "정원이가 날마다 이메일로 사진도 보내오고 방학이면 현빈이 선물로 초콜릿을 한아름씩 사오곤 한다"며 "가끔 딸이 몹시 보고 싶긴 해도 객지에서 씩씩하게 잘 적응해준 것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최씨 부부는 현빈이에게 입양사실을 알려줬다. 주위에선 "조용히 키우는 게 더 좋은 일 아니냐"며 말렸지만 박씨는 "내 배에서 낳진 않았어도 현빈이는 당당한 내 딸"이라며 개의치 않았다. 현빈이는 가끔 "낳아 준 엄마 얼굴이 궁금하다"고도 하지만 "훌륭하게 자라서 어른이 된 다음에 찾아보면 된다"는 말에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들이 밝게 자라고 있는 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라던 어머니 박씨는 자매의 공연이 끝난 후 "오늘은 내 인생에 가장 멋진 선물을 받은 날"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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