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솔로몬의 지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솔로몬의 지혜

입력
2004.11.08 00:00
0 0

'지혜의 왕’이라고 불리는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에 관한 얘기는 ‘솔로몬의 재판’ 등 무수히 많지만 그가 왕자 때의 일화도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인 다윗 왕이 어느날 궁중 세공장을 불러 "나를 기리는 아름다운 반지를 만들되,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스스로 자제할 수 있고, 큰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반지에 새겨넣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며칠을 밤낮으로 고민하던 세공장은 결국 솔로몬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이내 무릎을 탁 쳤다. "왕이 승리에 도취한 순간 이를 보면 자만심이 금방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 중에는 이내 큰 용기를 얻어 항상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라며 솔로몬이 써 준 글귀는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한마디였다. 이처럼 총명해 즉위 후 이른바 ‘40년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지만 그 역시 말년에는 차츰 오만해져 자신의 경구(警句)를 잊어버린 채 이방인 여자를 수없이 거느리는 등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 이 예화의 성서적 의미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권력 부귀 명예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또 아무리 선한 심성을 가졌더라도 지위에 오르고 명망을 얻으면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쉽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반면 경쟁과 효율이 최고의 미덕으로 꼽히는 요즘 세상에선 선의와 호의는 어리석음으로, 관용은 무능함으로, 화해와 용서는 변명으로 이해되기 일쑤다. 최근 한 TV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들이 "착하다는 것은 곧 바보라는 얘기"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도 있다.

■ 낙엽이 길거리에 나뒹굴고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면 괜히 마음이 바빠지고 종종걸음을 치게 된다. ‘특별한 불경기’라는 대통령의 신조어를 듣다 보면 이 암울한 불황의 늪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새해엔 장밋빛 희망을 가져도 좋은지,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은 어떤 메시지와 비전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민초들의 삶과 정신을 이토록 팍팍하게 만드는가. 진실로 자신들의 몸과 눈을 낮추지 않으면 민심에 다가갈 수 없다. 그 출발은 가진 것에 대한 집착을 털고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