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服務現代 現代意識’(복무현대 현대의식·현대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현대차를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다 한다) 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60㎞ 떨어진 순이구(順義區) 린허(林河)공업단지. 베이징기차와 현대차의 50대50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기차 공장 5㎞ 전방부터 왕복 4차로의 길가 양쪽에 ‘복무현대, 현대의식’이라고 쓰여진 깃발이 20c마다 나부끼고 있다. 마치 ‘현대왕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다.베이징현대기차 노재만 총경리(사장)는 4일 이곳을 방문한 기자에게 "공장이 들어선 뒤 지역 경제가 급성장하자 정부 당국에서 자발적으로 매단 걸개글"이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지난달에만 모두 8,085명이 찾는 등 중국인 방문객이 쇄도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현대차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현대속도(速度)’ 때문이다. 2002년10월 출범한 베이징현대기차는 설립 2개월만인 2002년 12월 EF쏘나타를 생산, 판매했다. 회사가 문을 연 지 두 달 만에 차가 나온 것은 중국시장에 훨씬 먼저 진출한 외국 메이저업체들이 엄두조차 내지 못한 전례 없는 일이다. 사실상 진출 원년인 지난해엔 EF쏘나타 단일 차종으로 5만2,128대를 판매, 중국 자동차(승용차) 시장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선발주자인 혼다가 중국에서 승용차 연간 판매 5만대를 돌파하는 데 3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무서운 속도다.
올해부턴 아반떼XD(현지명 엘란트라)도 투입했다. 10월까지 EF쏘나타와 엘란트라를 합쳐 모두 11만862대를 팔아 단박에 5위(1~9월 합계도 5위)로 올라섰다. 한달 판매량(1만6,750대)만 보면 지난달 이치폴크스바겐(2만5,755대), 상하이폴크스바겐(2만1,700대), 광저우혼다(1만6,923대)에 이은 간발의 차의 4위이어서, 월별 판매량 기준으로는 곧 3위권에 진입할 전망이다. 월별 기준으로 4위에 오른 것은 10월이 처음이다. 특히 엘란트라의 경우 10월 한달간 1만3,143대가 팔려 중국 내에서 판매되는 전체 승용차 모델 가운데 2위를 차지했다.
최성기 부총경리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회사 출범 2년 만에 이렇게 성장하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최근 중국 언론에선 이를 ‘현대속도’라는 말로 대서특필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현대기차 공장은 하루 22시간 가동되고 있다. 11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지만 나머지 2시간이 식사 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4시간 체제다. 공장 시설은 쏘나타와 그랜저XG를 생산하는 현대차 아산공장보다 오히려 더 최신식이다. 굳이 다른 점을 꼽는다면 우리나라 생산현장에선 찾아보기 힘든 여성 근로자의 비율이 전체의 17%로 꽤 높다는 것.
김태윤 생산본부 부본부장은 "수당 때문이긴 하겠지만 연장 근무나 휴일 특근을 마다하는 직원은 단 한명도 없다"며 "평균 연령도 25세로 젊은데다 결근율도 한국의 4분의1 수준인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연장 근무와 휴일 특근까지 할 경우 중국 근로자들이 받는 월급은 2,800위안(약 37만5,000원)에 달한다. 베이징시 평균 급여인 1,000위안의 3배에 가깝다.
자동차는 100초당 한 대 꼴로 생산된다. 공장 정문에는 최종 품질검사까지 마친 EF쏘나타와 엘란트라들이 대리점(딜러)으로 출발하기 위해 항상 수십대씩 줄지어 서 있다. 노 총경리는 "쏘나타와 엘란트라는 지금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딜러들이 공장에서 기다리다 생산되자 마자 차를 가져간다"며 "이미 베이징현대기차가 만든 16만여대의 자동차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대륙을 질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일근기자 ikpark@hk.co.kr
■현대車 쾌속질주 비결/MK 돌파력·현지화 전략 적중
베이징현대기차의 쾌속 질주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최고경영자의 결단과 정치적 교섭력이 크게 작용했다. 특히 베이징현대기차가 2002년 10월 설립된 지 단 2개월만에 EF쏘나타를 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결단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2002년 2월 베이징기차와 합작의향서를 체결한 정 회장은 "중국 시장은 반드시 뚫어야 하니, ‘된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작업을 미리 준비하라"고 특별 지시했다. 당시로는 중국 국무원 비준을 받아낼 수 있을 지 전혀 알 수 없던 안개 속의 시기였다. 그러나 그 해 9월 국무원 비준이 나왔고 미리 준비해온 현대차는 곧바로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 회장이 중국 고위층과의 ‘핫라인’을 통해 국무원의 움직임에 대한 정확한 감(感)을 잡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외국 기업들이 저마다 베이징시장(市場)에 진입하기 위해 대정부 로비에 총력을 쏟고 있던 판국에서 현대가 국무원의 비준을 얻어낸 것은 제품경쟁력 외에 정치적 협상력이 뒷받침 되지 않고서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현지화에 발 빠르게 나간 것도 성공의 배경이다. 뒷좌석이 넓고 질이 낮은 연료에도 끄덕없는 중국형 EF쏘나타를 제작해 현지인들의 구미를 당기면서 대리점 수익 극대화 전략을 통해 현지 딜러들과의 ‘윈원정책’을 편 것이 맞아떨어졌다.
현대가 급성장을 거듭하자 현지의 외국경쟁업체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85년 중국에 가장 먼저 진출한 상하이폴크스바겐에 이어 91년 이치폴크스바겐, 97년 상하이GM, 98년 광저우혼다 등이 현대의 경쟁 상대이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이미 독일에서 30년 전 단종된 ‘제타’와 ‘싼타나’로 대결하고 있어 오히려 현대차의 제품 경쟁력이 낫다는 평이다. 경쟁업체들이 5~6가지 모델을 시장에 내 놓은 반면 현대의 경우 단 2가지 모델로 비약적인 성과를 달성, 이달 투싼과 내년 하반기 쏘나타가 투입될 경우 현대의 약진이 더 빨라질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베이징=박일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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