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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나더러 '구년묵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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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에세이 /나더러 '구년묵이’라 해도…

입력
2004.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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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버리면 안돼?"옷장을 정리하던 아내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내질렀다. 손에 들린 것은 16, 7년 전 전남 구례 여고에 근무할 때 사 입은 아주 두꺼운 겨울 신사복 바지였다.

"아직 멀쩡한 것을 왜 버리려고 그래" 나도 퉁명스럽게 말을 받았다. "저 따위 바지를 요즘 누가 입는다고…." 아내는 계속 불평을 해댔지만 나는 올해도 그 바지를 버릴 마음이 전혀 없다. 비록 ‘쉰 세대’ 소리를 들을망정 거북한 새것보다는 그 오래된 바지가 훨씬 편하다.

사실 그 바지엔 아내가 모르는 사연이 있다. 당시 읍내 매장에서 2학년 때 내게 문학과목을 배운 제자를 만났다. 졸업하고 그곳 직원으로 근무하던 그 아이가 권한 게 그 바지였다. 제자가 권하니 토를 달 수가 없었다.

오십 줄에 들어선 지금은 몸집도 불고 똥배도 제법 나왔지만, 허리를 딱 한번 늘린 그 바지를 입는데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뭐니뭐니해도 두꺼운 것이 마음에 든다. 요즘은 무슨 이유로 그렇듯 얇게 겨울 옷들을 만드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얇은 겨울옷은 ‘왕짜증’이다. 아마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에다 일종의 복고취향도 한몫하지 싶다.

그러고 보니 10년 전쯤 산 두터운 T셔츠도 그대로 있다. 입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긴 승용차도 10년 넘게 타고 있다. 아내나 주변 사람들의 차 바꾸라는 성화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사실이지만 결단이 쉽지 않다. 핸들이 손에 착 달라붙는데야 어쩌겠는가.

두꺼운 바지나 T셔츠도 마찬가지다. 나더러 ‘구년묵이’라고 아내가 성화를 하고 남들이 짠돌이라고 비웃어도 할 수 없다. 다 닳아 떨어지기나 하면 모를까 그러기 전까지는 계속 입을 참이다. 나는 아내에게 오금을 박듯 말했다. "절대로 버리면 안돼!"

장세진·전주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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