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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심정의 옷고름을 정직하게 풀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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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심정의 옷고름을 정직하게 풀어버리자"

입력
2004.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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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낸 신달자 시인시인 신달자(61·명지전문대 교수)씨에게 시(詩)를 쓰는 일은 정(淨)한 첫 새벽 외할머니의 두레박질과 어머니의 키질 같은 것이다. ‘동틀 녘 열 길 우물 속에서 길어 올리는/ 외할머니 두레박에 어리는 첫 햇살 섞인 말/ 단 한 알의 돌마저 고르는/ 어머니 수천 번의 키질 끝에 눈송이 같은/ 하얀 쌀밥 위에 따스한 김으로 오르는 말’(‘말을 찾아서’)을 찾는 일이다.

그녀는 72년 등단이래 10권(시선집 제외)의 시집을 냈다. 그리고 최근 무려 6년 만에 11번째 시집 ‘오래 말하는 사이’(민음사 발행)를 상재했는데, 그 감회가 "첫 시집을 낸 기분"이라고 한다. ‘천 날 기원이 깃든 속 깊은 겹겹의 그 말들/ 덜커덩 젊은 날의 급 물살에 떠내려 보내고…/ 들릴 듯 들리지 않는 말 찾아 나 오늘도 떠내려 가네’(‘말을 찾아서’)

시인은 2000년 남편과 사별하고 난 뒤 두어 해 동안 무척 아팠던가 보다. 신의 언어는 침묵이라고 했던가. 그 상실과 상처의 어름에 말을 찾겠다던 시인은 아예 말을 버린다. ‘오대산 국립공원 팻말 앞에/ 말과 소리를 벗어놓고’ 걷고(‘침묵피정1’), ‘말문이 아니라/ 목숨도 닫을 요량으로/ 저 세상의 소음과/ 단절의 각오를 투합’하고, ‘눈 산 위에 입 꽉 다문 결의를 찍으며/ 침묵의 재를 넘는다’(‘침묵피정2’). 하여 시인은 ‘소리도 없이/ 피도 눈물도 죄업도 받아들이는/ 저 입 무거운 강’(‘응달의 바람은 소리가 없다’)을, ‘흙을 입에 문 흙의 알들을/ 눈물로 땀으로 온몸으로’(‘감자 밭에서’) 끌어 안는다.

상처는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다. 그렇게 말을 버리고 내면을 깊고 넓게 달구질했던 시인이 다시 찾은 말은 ‘그저 그렇고, 예쁠 것도 없고, 작고 하찮은…’,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같은 일상의 것들이다. 그는 그 말들을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여보! 비가 와요’)이라고 했다. 시인이 오랜 세월 찾던, 두레박에 어린 첫 햇살 같은 말이다. ‘침묵의 연꽃 개화를 볼 수 있을까/ 단 한마디만 피게 할 수 있을까’(‘오래 말하는 사이’) 시집 머리말에서 그는 "가능한 정직하게 심정의 옷고름을 풀기로 했다. 늘 긴장하고 온몸을 조여 딱딱하게 굳어있던 삶의 이완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시름시름 앓는 나를 보고/ 문정희 시인이/ 신 선생 약은 딱 하나/ 산 도적 같은 놈이/ 확 덮쳐 안아주는 일이라고 한다…"

되돌아 보니 그런 말들이 바로 시(詩)더라는 게 시인의 말이다. ‘야성의 으르렁거리는 불빛을 켜고/ 주저앉으려는 내 몸을 번쩍 들고/ 이 시대의 강을 건너고/ 이 시대의 태산을 화살처럼/ 오르는…’ 그런 산 도적을 찾는 일도, 따지고 보면 시인의 일이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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