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미국 대선의 축배와 쓴 잔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전 민주당 후보만 마신 게 아니다. 그들 뒤에서 뜻 밖의 횡재를 한 이도 있고, 재기 불능의 날벼락을 맞은 이도 적지 않다. 최대 승자는 부시의 선거참모 칼 로브. 그는 흑색 선전을 주무기로 쓰는 비열한 선거꾼이란 비난을 받지만 41전 37승이라는 기록적 선거 승률을 기록했다. 그와 손 잡고 ‘케리 거짓 무훈’ 논란을 일으킨 ‘고속정 참전용사’ 대표 존 오닐은 케리 비난서 ‘지휘 부적격’으로 돈방석에 올랐다.반면 케리의 선거 참모 밥 쉬럼은 정치인이라면 소금을 뿌려가며 멀리해야 할 존재가 됐다. 올 대선과 2000년에서 앨 고어를 떨어뜨린 것을 포함해 선거전 7연패다.
의회에선 톰 드레이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가 돋보이는 승자. 선거구를 공화당에 유리하게 뜯어고치는 막무가내식 전략으로 입지를 굳혔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과 부시의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차기 대권 도전 가능성을 더욱 높인 승자. 반면 위풍당당하던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지도자는 낙선, 한 순간에 물갈이 대상으로 전락했다.
민간 인사들의 승패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반 부시 선거전에 3,000여만 달러를 쏟아 부은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 패자이고, 케리 지지를 호소한 가수 에미넴, P 디디, 브루스 스프링스틴, 영화 배우 팀 로빈스와 숀 펜 등도 2000년 대선 후 유럽으로 떠난 배우 조니 뎁을 떠올릴 판이다.
부시 지지를 호소해 케리의 보스턴 레드삭스 우승 세몰이에 찬물을 끼얹은 투수 커트 실링도 승자로 부각된다.
승자 같은 패자, 패자 같은 승자도 많다. 영화 터미네이터2의 대사 ‘난 돌아온다’(I’ll be back)를 딴 ‘부시는 재선한다’(Bush will be back)란 구호를 유행시킨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다 민주당인 케네디 가문 출신 아내 마리아 슈라이버와 관계가 불편해 졌다.
반 부시 운동가인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패자 같지만 ‘화씨 9·11’로 2억 달러를 벌어들여 사실은 대선의 승자라는 평.
보스턴의 한 신문은 "부시의 말썽꾼 쌍둥이 딸은 4년을 더 조심스레 살아야 하니 패배자 "라는 억지를 부리며 쓰린 가슴을 달랬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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