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 신동원 지음·역사비평사 발행·1만7,800원1821년 정체불명의 역병이 조선을 급습한다.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해 온몸이 비틀어지고, 설사가 끊이지 않는 이 병에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우리 조상들이 단지 괴질(요괴스러운 질병)이라고 부르며 고양이 그림 부적과 피난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 역병은 64년 후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뜻의 ‘호열자’(虎列刺·콜레라)라 불린다.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는 "괴질에서 ‘호열자’로 명칭이 바뀌는 시점에 조선인의 몸과 병, 의료체계에 커다란 변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호열자’의 등장을 전근대와 근대의 분기점으로 본 것이다. 역병을 하늘의 재앙이며 운명이라 여겼던 시절이 전근대였다면, ‘호열자’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한 근대는 질병을 과학으로 극복 가능하다고 보는 낙관의 시대다.
전근대는 국가 차원에서 역병을 쫓는 여제(勵祭)가 열리고, 병의 유행 규모에 따라 중앙에서 파견하는 제관의 등급이 달랐던 때다. 전염병 창궐 정도가 심할 때는 왕이 직접 제문을 짓기도 했다.
역병에 대한 통제가 시작된 근대는 몸에 대한 권력의 입김이 가해진 시기다. 1882년 김옥균이 ‘치도약론’에서 거리 청결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신제도인 순검에게 맡길 것을 주장하고, 내무대신 박영효가 갑오개혁 이후 경찰의 업무에 위생경찰사무를 정착시킨 것이 그 예다. 위생의 이름으로 상투가 잘려나가고, 서양의학에 밀려 한의학의 전통이 과소평가 받게 된 것도 근대의 풍경이다.
‘조선사람의 생로병사’ ‘조선사람 허준’ 등으로 의학사 연구에 적지 않은 성과를 쌓아 온 저자는 근대 언저리의 급변하던 의료 생활과 전통 의학의 세계를 함께 복원해 낸다. TV 드라마 ‘대장금’으로 익숙해진 의녀에 돋보기를 들이대기도 하고, 제중원과 우두법이 신화로 자리 잡은 과정을 되짚으며 우리 의학 역사에 드리워진 식민주의의 그늘을 비판하기도 한다.
탄탄한 학문적 소양을 바탕으로 쉽게 풀어 쓴 문체가 다양한 시각 자료와 어우러져 의학이라는 무거운 내용을 의외로 가볍게 전달해준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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