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새벽 1시8분. AP통신이 긴급 기사를 타전했다. "존 케리가 대선 패배를 인정했다."야근을 하던 기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러닝메이트 존 에드워즈 부통령 후보가 오하이오주의 잠정투표를 이유로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한 터여서 이렇게 빨리 상황이 정리될 것으로 생각치 못했기 때문이다.
예상 밖이기는 패자의 입에서 먼저 나온 ‘국민 통합’ 호소도 마찬가지였다. 케리 후보는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라가 너무 갈라져 있다"며 지도층의 국민 통합노력을 당부했다. 그는 이어 행한 패배 연설에서 "나는 당파적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며 "나의 지지자들에겐 어려운 시기임을 알지만, 모두 이 일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날 때면 우리 모두는 다시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 선거에서 패자란 없다"고도 했다.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이 패배 승복연설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자리에 선 케리 후보의 심정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향한 통합을 시종 역설했다.
부시 대통령도 당선 연설을 통해 "위대한 미국을 만들기 위해 나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케리 후보 지지자들의 서운한 마음을 어루만졌다.
앞으로 미국이 선거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선거 직후 승자와 패자의 국민통합 다짐과 호소는 신선했다. 대통령이 5월 헌재의 탄핵안 기각 직후 ‘통합의 정치’를 약속했지만, 이후 벌어진 일이라곤 상대에 대한 험구와 편 가르기 뿐인 우리 정치 현실이 새삼스레 초라해 보인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고성호 국제부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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