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오늘 술 한 잔 할까?""네! 식사는 어디서 하고 갈까요?"
"술 마시는데 식사는 무슨? 안주나 푸짐하면 되지!"
퇴근길 직장인들이 흔히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삼겹살을 구워 먹거나 호프집에서 시원한 맥주잔을 들이키며 소시지로 배를 채우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배가 고프다고 식사를 따로 시키려면 눈치 보이고 왠지 어색하다.
하지만 이런 모습도 조금씩 옛날 얘기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술과 식사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요리주점’들이 주객(酒客)을 끌어 모으고 있어서다.
요리주점이 새로운 음식 코드로 떠오른다. 술과 잘 차려진 음식을 함께 내놓는 곳으로는 종전까지 일본식 선술집(이자카야) 정도가 주류를 이뤘는데 최근 한층 업그레이드된 형태의 요리주점들이 등장해 인기를 높여가고 있다. 돈가스전문 요리주점, 퓨전 음식을 내놓는 선술집, 솥밥과 함께 즐기는 술자리 등 요리주점의 형태와 메뉴도 가지각색이다. 어디든 술 먹는 사람, 밥 먹는 사람이 편하게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만은 공통점. 오늘 저녁 퇴근길은 자연스럽게 요리주점으로 향할 것만 같다.
●진까스 (02)777-0741 명동 유투존 백화점 앞 골목
낮에는 일본식 오리지널 돈가스, 저녁에는 일본의 가정식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 일본에서 30년 넘게 살다 한국에 온 재일교포 주인 김성진씨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낸다.
‘진까스’로 불리는 여기 돈가스는 돼지 등심살을 마늘과 야채소스에 마리네이드(양념)한 후 튀겨낸다. 고운 빵껍질은 바삭바삭한데 속살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특히 고기 가장자리를 살펴 보면 돼지 비계가 그대로 있는데 이 곳의 전매특허 표시다. 여느 돈가스 집과 달리 비계를 잘라내지 않고 그대로 두고 튀겨내는데 맛이 오히려 고소하다. 처음 먹는 사람은 ‘웬 기름이냐’고 물어 보지만 두번째부터는 그 기름맛 때문에 다시 찾는다.
저녁시간 2층 손님들은 주인 김씨가 차려주는 일본식 음식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인다. 된장 참치회, 일본식 무절임, 호박절임, 꽁치소금구이 등 그날그날 최고로 신선한 재료들로 만든 요리들이 코스로 나온다. 매일매일 바뀌는 메뉴는 조그만 종이에 일본어로 써놓았는데 처음 온 손님들은 하나하나 물어보고 시킨다. 하지만 두번째 오면 아예 물어 보지도 않고 알아서 시킨다. 맛을 믿어서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음식을 즐거운 표정으로 손님에게 내놓는 요리주점을 생각한다는 주인 김씨는 수시로 테이블을 오가며 인사하기에 바쁘다.
●하이카라야 (02)730-2220 인사동 스타벅스 옆골목
일본에서 유명한 퓨전음식 전문 선술집 체인으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인사동에 상륙했다. 외관과 다다미방 형태의 인테리어는 이자카야인데 음식은 전혀 일본식만은 아니다. 치즈와 김치, 심지어 푸아그라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했고 컨셉은 퓨전이다.
메뉴 모두가 일본 본사에서 직접 개발한 신메뉴들로 구성돼 있다. 스페인식 빠에야, 중국식 춘권과 돼지찜 요리 등 50여 가지가 넘는다. 마요네즈를 베이스로 달콤하게 만든 오로라소스 새우튀김, 장어와 크림치즈 춘권 등이 인기 메뉴. 살짝 튀겨낸 커다랗고 얇은 춘권을 그릇 삼아 기름에 튀겨낸 새우가 담겨 있다.
밥을 크림치즈에 묻혀 김밥식으로 말아낸 뒤 기름에 튀기고 안에 깻잎과 장어를 넣은 장어와 크림치즈 춘권 또한 맛과 장식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손님들은 소주에 매실즙, 녹차 등을 섞어 커다란 유리잔에 내는 혼합소주와 일본 맥주를 주로 마신다. 메뉴판의 음식마다 번호가 적혀 있어 손님들은 주문 용지에 번호만 적어 종업원에게 건네주면 음식을 가져다 준다. 2, 3층 전체가 룸 형태로 꾸며져 있고 예약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라마마 (02)723-8250 삼청동
낮에는 솥밥, 저녁에는 일본식 코스 요리로 유명하다. 라마마의 ‘라’는 스페인어로 ‘the’를 뜻하고 마마는 중국어로 엄마를 의미한다. 이름처럼 안주인 조혜원씨가 엄마가 차려주듯 정성과 솜씨가 담긴 요리들을 내놓는다.
식사 메뉴로는 일본식 솥밥이 압권이다. 콩나물을 듬뿍 얹어 나오는 콩나물 솥밥은 테이블에 오르는 순간 향긋한 콩나물 내음으로 코끝을 자극한다. 쪽파와 부추가 가득 담긴 커다란 대접에 밥을 담고 간장 양념장을 넣어 비벼먹는 맛은 집에서 먹던 콩나물밥 그대로다. 부추는 일반 부추가 아닌 가느다란 영양부추를 쓴다. 미소국과 계란을 비롯, 밑반찬은 일본식 곤약과 검은콩, 초에 절인 배추와 무 오이 등 깔끔한 일식풍이다.
저녁때 손님들은 코스 메뉴와 함께 정종이나 와인을 즐겨 마신다. 요구르트와 파인애플로 직접 만든 드레싱을 얹은 마마샐러드, 춘권, 중국식으로 구운 돼지목살, 두부튀김, 솥밥으로 짜여지는 코스는 2만원. 낫토찌개나 명란찌개 등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음식들도 있다. 축대 위에 있어 1층이 2층 같고 2층은 3층 높이다. 두개 층 모두 조그만 테라스 좌석도 갖고 있다.
●쿠지라 (02)322-6602 홍대앞 피카소거리 유창빌딩 3층
고급 일식 수준의 요리를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요리주점. 젊음의 거리 홍대앞에서는 드물게 맛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실내 인테리어는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공간이 확 트여 있는 컨셉.
대표 메뉴는 사시미.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서만 요리 경력을 쌓은 이충용 조리사가 정성껏 담아낸 생선회 맛이 일품이다. 신선한 생선을 적당히 숙성시켜 내놓는데 씹으면 질감이 쫄깃하면서도 입에서 사르르 녹는듯 하다. 조리사의 솜씨는 생선을 도려낸 칼자국의 흔적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칼날이 지나간 부위 어디 하나 미세한 흔들림도 없는듯 고르기만 하다. 색상과 모양에 따라 생선회를 가지런히 얹어 놓은 접시를 보면 마치 예술작품처럼 보인다. 작은 접시가 5만원. 사시미 요리 하나를 시키면 소바 샐러드 무조림 회무침 오징어 초밥 생선구이 모듬해물 튀김 매운탕 마끼 등 한상 푸짐하게 곁반찬이 곁들여진다. 메뉴판에는 없지만 3만원짜리도 해 준다. 주인은 서울 삼성동 미래에셋빌딩의 스카이라운지 라퓨타를 운영하는 김석씨.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으로 전국 200여 곳의 레스토랑과 식당 개업을 컨설팅해준 외식컨설턴트로 유명하다.
/글·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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