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월급을 받으면 조그만 ‘동네서점’으로 달려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 번 읽으면 끝’이란 생각에 소설류는 쳐다보지도 않고, ‘폼나는’ 철학책이나 엉뚱한 학과의 개론서 따위를 뒤적거리곤 했지요. 이윽고 너댓 권쯤 안아 들고 계산대로 오면, 맘씨 좋은 ‘주인아줌마’가 몇 퍼센트씩 깎아주는 재미도 있었습니다.약속은 꼭 서점에서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도서관보다 많은 책이 있는 ‘대형서점’이란 곳을 알고부터였지요. 웬일인지 매대에 놓인 것보다는 서가에 꽂힌 책들을 빼어보는 게 즐거웠습니다. 어차피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종이봉투를 들고 서점을 나설 때면 괜시리 ‘유식’해진 것 같아 우쭐한 기분이었지요.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뿌듯함, 그 즐거움은 제 곁을 떠나버렸습니다. 이제는 서점을 가도 어떤 책이 팔리는지, 어떤 독자가 무엇을 사는지만 쳐다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란 건 아마도 변명일 것입니다. 지식을 채우기보다는 그것을 사용하기에만 익숙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 권 한 권 뒤적이며 보고 싶은 책을 고르던 그 ‘마음’만은 말입니다. 내가 만든 책을 누군가 그렇게 꼼꼼히 뜯어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러다 ‘에잇’ 하고 내려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한 번 더 연구하고 매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권의 책이 팔린다는 것은 그 책에 담긴 에디터의 마음이 독자의 마음에 가 닿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거꾸로 책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책으로 만드는 데 개입한 사람들의 생각과 노력을 함께 사는 일일 테지요. 에디터와 독자는 그렇게 책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민기 출판기획자 두앤비컨텐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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