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이력서] IT계의 선구자 이용태 <36> 휴먼컴퓨터의 좌절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이력서] IT계의 선구자 이용태 <36> 휴먼컴퓨터의 좌절

입력
2004.11.04 00:00
0 0

지난 회에 정 철 박사와 휴먼컴퓨터에 관해 이야기했다. 당시 휴먼컴퓨터는 벤처기업으론 더 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췄다.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 이상적인 근무 환경에서 마음껏 개발에 몰두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작은 회사에서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하려 했기 때문이다.이 회사는 글자 모양 자동화 작업과 레이저프린터·탁상 인쇄 소프트웨어 개발 등 세 가지의 큰 일을 한꺼번에 추진했다. 이들 기술은 현재 각 분야마다 세계적인 대기업이 도사리고 있다. 그때 만약 다른 회사에서 사올 수 있는 기술은 수입하고 꼭 필요한 기술에만 집중했다면 성공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지혜를 무시한 대가는 이처럼 가혹했다.

이머신즈로 되돌아 가보자.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우리 경제는 급속도로 위축됐다. 삼보도 위기를 맞았다. 그 때 정 철 박사는 두 가지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아 위기를 극복했다. 첫째는 체인지업 모델이다. 정 박사는 항상 이용자 입장에서 PC의 불편한 점을 살펴봤다. 그리고 PC는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2년마다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해야 하는 게 가장 큰 부담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궁리 끝에 그는 삼보의 PC를 산 사람에게는 거의 공짜로 업그레이드 해주는 전략을 생각해냈다. PC 전체를 새로 사야 하는 부담을 덜어준다는 전략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체인지업이다. 이 모델은 국내 시장에서 크게 히트했다. 소비자들은 PC를 살 때 경제적인 이용 기간이 2년 밖에 안 되는 다른 제품보다 가격은 다소 비싸더라도 안심하고 4년 이상 쓸 수 있는 체인지업을 선호했다. 체인지업이 국내 시장용이었다면 이머신즈는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 미국 시장에서 컬러 모니터를 끼워 500 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PC를 출시한다면 1년에 100만대 이상은 너끈히 팔 수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이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바꿔 말해 500 달러 미만으로 가격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다.

정 박사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냈다. 그 아이디어는 다른 회사의 협력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지만 정 박사의 아이디어를 이홍순 사장이 과감하게 밀어줌으로써 기적이 실현됐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삼보컴퓨터는 주요 부품 업체의 세계 3등을 불러 모아 "3등은 괴롭다. 1등은 100만개씩 파는데 3등은 10만개씩 밖에 못 파니 이익내기가 힘들다. 또 기술이 빨리 변해 생산설비를 2년마다 교체해야 하는데 3등짜리는 감가상각도 끝나기 전에 시설을 교체해야 하는 등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삼보가 생각하는 이머신즈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면 이러 저러한 이유로 미국 시장에서 100만개쯤 파는 건 문제도 아니다. 여러분도 일류 업체로 발전할 수 있으니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하자"고 말했다. 최저가 PC를 만들기 위해 부품을 최대한 싸고 안정적으로 공급 받아 생산비를 줄이겠다는 작전이었다. 판매는 그 다음 문제였다. 업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당연했다. 그러나 제안의 취지를 이해하면서 한사람, 두사람 제안에 찬동, 드디어 500 달러 미만의 PC가 탄생했다. 이렇게 해서 삼보는 미국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부품 업체들도 크게 만족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