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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악기마이스터 된 강병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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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첫 악기마이스터 된 강병재씨

입력
2004.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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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독일의 마지막 악기 마이스터가 됐다.마이스터(명장·名匠)는 각 분야 최고의 기능인을 일컫는 말로 준(準)마이스터 3년 반, 마이스터 3년의 엄격한 수련 과정을 거치고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따낼 수 있는 영예이다. 독일 최고의 명장 마르틴 베너, 하리 고섹 밑에서 배운 강병재(36)씨는 목관악기 최초의 한국인 마이스터이자 독일의 마지막 마이스터이기도 하다. 지난해를 끝으로 독일에서 모든 종류의 악기 제작 관련 마이스터 제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심각한 실업난을 해소하기 위해 마이스터가 아니면 가게를 열 수 없도록 한 규정을 준마이스터로 10년 이상 일한 사람도 열 수 있게 완화하면서 500종이 넘는 마이스터 제도 중 200여 개가 폐지됐다.

강씨는 지난달 22일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빈의 부촌인 9구에 ‘BJ 플루트’라는 가게를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등에서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 마이스터는 그가 유일하기 때문에 플루티스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실력은 마이스터 자격증을 따기 전부터 독일 남부에서 유명했다. 스승 베너의 가게에서 일할 때 거기에 악기를 맡겼던 영국의 유명 플루티스트 수잔 밀란은 "수없이 악기를 고쳐봤지만 이처럼 잘 고친 적이 없다. 내 악기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 놀랍다"며 감탄했다. 빈의 가게를 찾은 날도 유명 연주자인 마크 그로웰스가 스웨덴에서 전화를 했다. "당신이 수리해 준 한국인 제자의 플루트를 불어봤는데 정말 훌륭하다. 당신이 만들거나 고친 다른 악기도 만져볼 수 있느냐?"며 흥분 어린 목소리였다.

강씨의 아버지는 화가이고 어머니는 발레를 전공했다. 서울의 한 예고에서 미술을 전공하다 병으로 자퇴한 뒤 플루트에 빠졌다. 제작자가 될 결심을 하고 유럽으로 건너 온 것은 1991년. 플루트를 잘 불어야 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오스트리아 대학에서 4년 간 연주 공부를 한 다음 독일에서 마이스터 과정을 밟았다. "플루트 부품이 몇 개나 되는지 아세요? 280개쯤 됩니다. 일일이 손으로 깎고 조합해 플루트 하나를 만들기까지 6개 월이 걸립니다. 끈기와 섬세함이 필요한 힘든 작업이지요. 지금까지 20개쯤 만들었는데 지금은 잠시 쉬고 있습니다. 고객을 확보하려면 당분간은 수리에 치중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언젠가는 ‘강병재 사운드’로 기억될 저만의 고유한 플루트 모델을 만들고 싶습니다."

낯선 이국에서 당당한 마이스터가 되어 자기 이름으로 가게를 열기까지 13년 동안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그 결과 고급 악기 수리와 제작뿐 아니라 제작기계와 주요 부품 개발, 컴퓨터 악기설계 작업까지 전 과정을 손수 해내는 유일한 마이스터가 되었다. 그의 활약을 기대한다.

빈=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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