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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전어를 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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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전어를 굽다

입력
2004.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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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뒤에 있는 산책로를 걸을 땐 내가 늘 앞서 걸으며 아내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한다. 그런데 이 관계가 시장에 가면 역전된다. 나는 카트를 밀며 아주 천천히, 천천히 걷는다. 아내가 늘 저만치 앞에서 빨리 오라고 재촉한다.물건을 많이 사든 적게 사든, 나는 시장의 물건들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게 있으면 양을 가리지 않고 박스째 사버린다. 시장에서 내가 걸음을 멈출 때마다 아내는 가슴이 덜컹거린다고 한다. 어제는 낱개로 몇 천원씩 하는 석류를 박스째 샀다.

석류를 싣고, 또 다른 시장거리를 잔뜩 본 다음 저쪽으로 수산물 쪽으로 가는데, 전어가 보였다. 얼마 전 바다가 있는 군산에 가서도 구경을 못하고 올라온 전어였다. 옛말에도 "가을 전어를 구우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고 했다. 내가 다시 걸음을 멈추자 아내는 저녁에 먹을 다른 시장거리를 내려놓든가, 전어를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이럴 때의 명답을 늘 준비해두고 있다. "알았어. 둘 다 먹고 일주일 굶을게." 그래서 어제는 돌아올 며느리도 없는 전어를 구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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