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는 ‘말 잘하는 학문’ 수사학의 첫번째 영역으로 재판 담화를 꼽았다. 법정에서 상대를 고발하거나 자신을 변호하는 말을 일컫는다. 재판에서는 말을 잘해야 한다는 통념은 빼어난 철학자의 식견과 통한다. 우리 사회에서 말 잘하는 사람을 변호사 같다고 하던 것도 법에 무지한 소리가 아닌 셈이다. 수사학이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등장한 것부터 민중을 지배하던 참주(僭主)들이 몰락하자 재산을 빼앗겼던 사람들이 되찾기 위한 소송을 잇따라 벌인 것이 배경이다. 당시 민중재판에서 대중을 설복하려면 말을 잘해야 했던 것이다.■ 민중재판, 시민재판의 역사는 이렇게 오래다. 고대 그리스 직접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민중의 재판 참여였다. 중대 국사범을 제외한 대부분 사건은 도시국가의 정규 구성원인 시민들이 주재하는 민중재판에 맡겼다. 시민 가운데 수천 내지 수백명을 추첨으로 뽑아 배심원단을 구성, 이들이 유무죄를 가리는 사실심 평결은 물론이고 법률심까지 맡았다. 소수 법률가의 재판은 부패하기 쉽고, 다수의 판단을 따르면 공평에 가까워진다는 사회적 믿음이 바탕이었다.
■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민중재판에 비판적이었다. 배심원들이 법률지식이 없고 정실에 이끌린다는 이유였다. 특히 소크라테스가 신에 대한 불경죄로 민중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사형당한 이래 플라톤 등 후학들은 그 폐해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민중재판 전통은 널리 존속했다. 15세기 절대주의 시대 국가주의적 로마법이 지배하면서 직업재판관 중심의 사법체계가 확립된 가운데도, 민중재판 원리는 영국과 미국으로 이어졌다. 시민혁명 뒤 프랑스도 ‘민중 자유의 수호자’로 배심제를 도입했다.
■ 우리와 같은 대륙법 체계인 독일도 참심제를 운영한다. 일본은 1923년 이른바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 시대 배심제를 채택했다가 2차 대전 뒤 폐지했으나 최근 다시 참심제를 도입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등에 비춰 우리 사회가 시민의 재판 참여를 시험하는 것은 뒤늦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제도라고 해서, 소크라테스 재판 이래 지속된 시비와 논란을 건너뛰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경험한 시행착오를 한꺼번에 겪기 십상이다. 이를 감당할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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