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졌다. 20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오하이오주의 개표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측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당락이 바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9·11 테러 이후 미국민들은 애국주의적 보수화 바람 속에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강행과 대 테러전을 적극 지지해 왔다. 일방주의와 선제공격론을 앞세운 부시 독트린에 대해 국제사회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적지 않은 회의가 있었음에도 부시 대통령이 미국민들에게 다시 선택된 것은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이다. 천문학적인 재정적자 등 부시 대통령의 4년 성적표를 둘러싼 논란은 전쟁 중 국가 지도자를 바꾸지 않는다는 미국인들의 애국주의에 묻혀 버렸다. 선거 막판에 불거졌던 빈 라덴 테이프는 미국인들의 안보불안 심리를 자극해 결국 부시 승리를 도운 꼴이 됐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하고 있다.
상ㆍ하원 선거에서도 공화당이 승리함으로써 미국은 백악관과 상·하의원, 그리고 연방대법원까지 모두 장악하는 미 역사상 유례없는 보수주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는 부시 대통령의 강경노선을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의미로 부시 집권 2기의 미국 사회에 보수주의의 격랑이 거세게 몰아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시 대통령은 이 같은 기반 위에서 선제공격론 등 자신의 독트린에 입각해 대테러 전쟁과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저지 정책을 더욱 강력하게 밀고 나가며 국제질서를 주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악의 축’인 북한과 이란의 핵 문제에 대해서도 한층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냉전종식 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감안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라크전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비판을 자초했던 부시 대통령은 이제 세계의 여론에도 귀를 기울이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보다도 이라크 혼란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고 안정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이 이라크 문제를 몇몇 동맹국의 도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분명해졌다. 부시 대통령은 이제 국제기구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끌어내는 외교력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긴장이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상황에도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 만큼 우리 정부는 치밀하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관계의 발전적인 재정립이다. 노무현 정부가 코드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추가 파병, 주한미군 감축협상 타결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한미관계를 회복시킨 것은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철저히 국익적 판단에 따라 한미동맹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외교안보라인의 공식 채널을 새롭게 정비해 부시 신정부와의 관계개선에 나서야 하며 민간 레벨에서 완충과 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비공식 채널도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특히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미국의 대립 격화로 한반도 안보상황에 중대한 위기가 닥칠 경우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을 포용하면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 가려는 우리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미국이 유엔안보리 제재 등을 통한 압박정책을 들고 나올 경우 한미관계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정부는 대북 핵 정책에 있어서 반드시 한미공조를 유지해야 하며 우리와 비슷한 입장인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을 설득해 내는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감축 및 재배치 합의 실행, 자이툰 부대의 이라크 파병기간 연장, 스크린쿼터 조정 요구를 비롯한 통상압력 등 부시의 신정부와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부시 신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음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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