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오하이오주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승리했으면서도 공식 선언을 다소 미뤄야 했고, 존 케리 민주당 후보진영은 좀처럼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다 여론에 밀려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36일간의 법정 공방 끝에 승부를 결정지었던 2000년 대선의 악몽이 오하이오주에서 재현되는 듯 했다.4년 전 플로리다에선 낡은 투표방식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번엔 오하이오의 독특한 선거제도가 미국의 새 지도자의 발목을 잡았다. 우선 선거인 명부에 없는 유권자가 투표장에 나올 경우 먼저 투표를 한 뒤 나중에 선거권 여부를 가리는 잠정투표(provisionals)에 예상보다 많은 표가 몰렸다. 케리 후보가 4일 새벽(한국시각)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잠정투표를 선거일 11일 이후에 개표토록 하고 있는 오하이오법에 따라 최악의 경우 최종 승패 판정을 오는 13일까지 기다려야 했을 뻔 했다.
민주주의의 교과서를 자부하는 미국에서,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과 소수파의 선거 승복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금이 가는 사태가 오하이오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하이오주의 선거관리 책임자인 케네스 블랙웰 오하이오 국무장관은 케리의 패배 인정이 나오기 전만 해도 "개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우리로서는 예측할 수 없다"면서 "여러분 모두 심호흡을 하고 느긋한 자세를 기다리라"고 도리어 목청을 높였다.
케리 진영은 케리 후보가 이날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기 전까지 해도 총투표수는 물론, 오하이오의 일반투표에서 13만6,000표나 뒤지고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불복 태도에 대한 미국 언론 등 여론의 곱지 않은 눈총과 무언의 압력이 갈수록 커지자 케리 후보는 결국 무릅을 꿇은 것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한때 잠정투표 시비 뿐 아니라 법정소송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오하이오는 케리가 3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후 무려 30여 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공을 들인 곳이다. 또 지난 4년간 25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져 실업문제가 최대쟁점으로 부각해 승리를 기대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케리의 패배 인정 전화가 있기 전까지 민주당측은 물론 공화당측의 변호사들이 오하이오주로 속속들이 집결했다.
오하이오 주립대의 법학 교수들은 각 구별로 상이한 잠정투표 자격 기준, 잠정투표와 부재자 투표를 반드시 개표해야 하는지 여부, 오하이오주 전체 투표에 대한 재검표 여부 등이 법적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오하이오주 잠정투표 방식이 지난 대선에서 플로리다의 유효표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펀치카드 방식이어서 지난 대선의 소송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는 듯 했다. 더욱이 공화당측이 오하이오주 유권자 3만5,000여명의 투표자격에 이의를 제기해 법정에서 심리가 진행중인 상황이어서 사태는 더욱 꼬이는 형국이었다.
케리의 승복으로 사태는 말끔히 해소됐지만, 직·간접선거 방식이 혼합된 ‘승자독식제도’ 제도의 시대적 타당성에 대한 의문은 앞으로도 논란거리로 이어질 전망이다. 아무튼 미국 민주주의가 이번에 다시 한번 타격을 입은 것만은 사실이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왜 승복 선언했나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이 3일 오전 예상보다 신속히 패배를 인정하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축하 전화를 한 이유는 무엇보다 오하이오주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부시에 13만6,000 표 뒤진 케리가 잠정투표 개표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17만~25만장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잠정투표의 80~90% 이상을 얻어야 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케리 후보의 러닝메이트인 존 에드워즈 상원의원은 마지막까지 케리에게 패배를 인정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에드워즈는 모든 선택방안을 검토하고 그것들을 모두 시도해볼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오하이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케리 후보는 또 오하이오를 얻는다고 해도 부시대통령과 접전을 벌이는 위스콘신에서 승리하거나 미개표 부재자 투표가 많은 뉴멕시코 및 기술적 문제로 개표가 중단된 아이오와주 등 2개 주에서 모두 승리해야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을 넘기게 되는데 이마저도 불투명했다.
더욱이 당선자 확정이 늦어지는데 따른 정치적 부담도 만만찮았다. 케리 후보는 지난 2000년 대선에서 재개표 논란 끝에 36일 동안이나 당선자 확정이 지연된 상황이 재현된다면 투표에서 나타난 미국의 분열이 더 심화될 것을 우려하면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 케리 측근들의 얘기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플로리다.펜실베이니아는 1:1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일 오후 7시(미국 동부 시간)시작된 개표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에게 단 한 번 ‘20분 천하’만 허용했을 뿐 시종 앞서 나갔다.
2일 밤늦게 부시가 예상을 깨고 플로리다에서 낙승하고 케리가 펜실베이니아에 깃발을 꽂으며 ‘빅3’ 접전 주 중 두 곳을 나눠 갖자 미국과 전 세계의 시선은 오하이오에 집중됐다. 케리는 3일 새벽까지 오하이오에서 10만여표 차로 부시를 추격, 마지막까지 대권의 향배를 예측할 수 없게 하는 접전을 연출했지만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이날 오후6시50분 켄터키와 인디애나 등 6개 주에서 개표 드라마가 시작됐다. 출발은 케리가 좋았다. 2000년 대선을 족집게처럼 맞혔던 조그비가 케리가 격전주 6곳을 휩쓸며 대승할 것으로 예상하는 등 공식·비공식 출구조사 기관들이 모두 케리의 승리를 예측했다.
투표함이 차례차례 열리면서 초 박빙 승부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오하이오 플로리다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등 접전주들의 출구조사 결과는 공표되지 않았고,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도 2000년 성급히 앨 고어 승리를 발표했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오후 7시30분 부시와 케리는 각각 9개 주에서 예정된 승리를 거두며 팽팽한 기세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주로 부시가 유리한 것으로 분류됐던 8개 주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아 부시가 불리한 것이 아니냐는 예측이 나왔다.
실제로 오후 8시10분께 케리가 북동부 작은 주들을 휩쓸면서 선거인단 78명을 확보, 부시를 12명 차로 앞서 나가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선 4년 만의 백악관 탈환 가능성을 조심스레 낙관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부시는 20분 후 노스 캐롤라이나 등 텃밭을 모조리 차지하면서 선거인단 확보 경쟁에서 81대 78로 앞서 나갔다. 오후 9시를 넘어서면서 부시는 격차를 155대 112로 더 벌리며 치고 나갔다.
국제 석유시장은 부시가 승세를 굳혀가자 바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케리는 11시40분께 최대 표밭인 캘리포니아주의 55명 대의원을 모조리 쓸어 담고,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에 승리하면서 선거인단 188명을 확보해 부시(197명)를 다시 턱 밑까지 추격했다.
이번에도 희망은 잠시였다. 같은 시각 abc, CBS방송에선 ‘플로리다 부시 승리’ 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이 순간 백악관의 웨스트윙에선 밖에서 다 들릴 정도의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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