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주인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2일 서울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은 전국에서 모인 3만 여명의 식당 업주들이 내던진 솥으로 작은 산을 이뤘다. "요식업을 긴급 재난 업종으로 선포하라", "화산 폭발 직전이다. 실업자가 쏟아진다"등의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역대 정권에서 보지 못했던 ‘생존권 요구형’ 집단 행동이다. 음식업 종사자들은 "솥단지를 집어 던지는 이 마음을 하늘 땅은 다 아는데 정부 당국은 왜 모르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얼마 전에는 집창촌 종사자들이 국회 앞에 몰려와 영업권 보장을 외치며 생존권 투쟁을 벌였다.요즘처럼 서민들의 삶이 고단한 적도 드물다. 경기 불황에 취업난과 물가고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은행 금리보다 장바구니 물가가 더 오르니 저축할수록 손해 보는 시대다. 소득은 제자리 걸음인데 세금은 자꾸 오르고 물가마저 뛰니 서민들은 지갑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업자는 80만 명을 넘어섰고 청년실업자만 해도 30만 명에 달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데 먹고 살 일이 더 아득해 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물가라도 잡아서 국민들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정부는 딴 일에 골몰해 있다. 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경제부터 살려 달라고 아우성쳐도 민생과 관계없는 '개혁입법'으로 세상을 들쑤셔놓고 있다. 왜 이 시점에서 이 법 때문에 여야가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하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서민들은 혀를 찬다. 도대체 정부 여당과 정치권이 이 나라 경제에 관심이 있기나 하느냐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경제난을 둘러싼 여러 논의에서 한결같이 지적되는 점은 경제를 살릴 분위기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와 경제정책 책임자의 약속과 전망이 수시로 바뀌고, 약속에 대한 실천도 따르지 않는다. 말로는 경제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나오는 정책이나 법안은 ‘경제 때리기’이거나 그나마 남은 불씨에 찬물을 끼얹는 조치들 뿐이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개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10ㆍ29 부동산 대책만 해도 그렇다. 당시에는 부동산투기와 집값을 잡으면 서민들이 내 집을 싸게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요즘 투기는 잡혔지만 거래가 극도로 위축돼 애꿎은 서민들이 이사는 커녕 전셋돈마저 뺄 수 없는 딱한 처지가 됐다.
경제부총리조차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이상한 법’이라고 언급한 성매매특별법은 또 어떤가. 성매매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이들도 엄연한 생산 계층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져 생활이 피폐해 진 때에 굳이 이들의 생계를 끊는 법을 시행해야 하느냐는 데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개혁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과제를 혁명식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하는 격이다. 군부독재나 권위주의 정권과는 또 다른 의미의 ‘개혁독재’다. 집권층만 도덕적이고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모두 반 개혁적이고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은 독선적이고 위험하다. 참여정부는 노동자 농민과 일용직 근로자들을 정치적 지지기반이라며 ‘신주 모시듯’ 떠 받들어왔다. 그런데 그 노동자와 서민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궁금해 지는 대목이다.
정부가 경제에 올인하지 않는 한 서민들의 ‘솥단지 시위’는 꼬리에 꼬리를 물 지도 모른다.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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