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를 연출할 때는 흥행에 대한 책임감을 못 느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3년 여 시간을 보내면서 제작비에 대한 도덕성도 감독의 ‘덕목’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최소한 적자는 보지 말자며 ‘주홍글씨’ 작업에 들어갔지만, 막상 작가로서의 욕심을 꺾지 못했습니다."변혁 감독은 91년 이재용 감독(‘정사’ ‘순애보’ ‘스캔들’)과 함께 연출한 단편 ‘호모비디오쿠스’로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등 유명 단편영화제상을 휩쓸며 충무로의 차세대 재목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지난 29일 개봉한 그의 두번째 장편 ‘주홍글씨’는 첫 주말 영화진흥위원회 공식집계로 전국서 30만명을 동원해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지만,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작지 않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극장을 나온 뒤 몇일 동안 머리 속에 머무는 영화"라는 호평과 "이해가 가지 않는 올해 최악의 영화"라는 악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연관이 없는 듯한 두가지 이야기를 다양한 형식으로 연결시켜 하나로 묶어내는 연출법이 낯설게 다가서기 때문은 아닐까.
감독의 설명은 이렇다. "언뜻 보면 스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살인사건과 형사가 등장하기 때문에 상업성이 농후한 장르영화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스릴러나 멜로영화라 생각하고 표를 구입한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낄 것입니다." 선입견 없이 백지상태에서 봐야 속내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르적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여러 영화적 장치를 통한 재미로 보상하려고 노력했어요." 기훈(한석규)이 가희(이은주)와 관계를 맺고 바로 누운 침대가 아내 수현(엄지원)이 있는 자기 집 침대로 바뀌는 장면전환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란다. 영화 100분 분량에 해당하는 필름 1만 피트가 사용된 이 장면은 그의 연출의도가 극명히 드러나면서도 꼼꼼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기훈과 가희, 수현의 섬뜩한 삼각관계를 드러내려고 세 사람이 마치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표현했어요. 가희 집의 물건을 통째로 기훈의 집에 옮기는 등 촬영에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장편 데뷔작 ‘인터뷰’에서 사실과 허구를 섞고, 과거와 현재를 재조합했던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에서는 사랑을 현미경 삼아 인간의 본능과 욕망의 실체를 헤집었다고 했다. "사랑은 인간의 본질을 아주 세밀하게 포착해내는데 적합한 장치거든요. 모호한 환상으로 포장된 사랑을 전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불륜이라고 보았습니다. 불륜은 굉장히 이기적인 욕심을 드러내는 것인데도 강렬한 사랑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애틋한 사랑 자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관객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하는 것 같아요."
원죄와도 같이 탐해서는 안될 사랑의 덫에 빠진 인물들의 고통을 묘사한 20분간의 트렁크 장면에 자신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도 했다. "처음에는 더 길게 가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절대적인 시간 분량으로 관객이 온몸으로 등장인물들의 고통을 함께 겪도록 하고 싶었죠."
미학 공부의 한 방편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변혁 감독은 "크쥐시토프 키엘슬로프스키나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향을 받은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나만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작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뮤지컬 영화를 빨리 만들어보고 싶다고.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지만 매우 흥미 있는 분야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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