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열린 제5차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는 유엔 개혁 문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정치 분야 회의 발언에서 유엔의 근본적인 개혁을 제안하였다. 유엔 개혁 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2차 대전 승전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고자 창설한 유엔은 50여 년간 회원국 급증과 냉전 체제 해체 등 국제사회의 큰 변화로 개혁이 불가피한 시점에 이르렀던 것이다.현재까지 유엔 개혁 논의는 여러 측면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핵심은 안전보장이사회 개편 문제다.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주요한 책임’을 수행하는(유엔 헌장 제24조) 안보리의 대표적 권한으로는 분쟁 발생시 상황을 조사하여 분쟁이 평화에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하며 분쟁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평화위반국에 대한 군사·경제적 재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새 회원국 가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안보리는 유엔을 통한 평화와 안전의 유지 및 조직 운영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기관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안보리 개편의 초점은 현재 5개 국으로 되어 있는 상임이사국 수의 확대 여부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회원국 증가와 국제사회의 다변화를 반영한 논의인 것이다. 문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어떤 나라가 새로 들어가느냐이다.
새 상임이사국 후보에는 일본도 포함되어 있다. 전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국가적 위상과 유엔에 대한 재정적 기여도를 고려하였을 때 일면 상임이사국 자격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질 만한 국가이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19세기 중반 청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2차 대전까지 1세기에 걸쳐 아시아에서 발발한 거의 모든 전쟁이 일본에 의해서 저질러졌으며, 더욱이 그러한 평화 파괴행위에 대하여 전후에 단 한 차례도 공식적인 사과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이미 공식적인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으며, 절차상 헌장의 주요 조항 개정에는 총회에서 전체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에 3분의 2의 비준과 안보리 상임이사국 전원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현재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하여 ‘전략적 무관심’이라는 방침 하에 애써 모른 척하고 있다. 아직 구체화되지도 않았고 다른 후보국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어떠한 ‘입장’을 취할 단계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강대국 사이의 모종의 정치적 타협에 의하여 가시화된다면, 우리 정부가 어떠한 원칙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할지 외교적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해답은 일본의 행동 여하에 달려 있다. 우선 일본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책임을 질 만한 국가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이 일으킨 전쟁과 강점으로부터 고통받았던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와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이를 법제화하며 현재의 군국주의화를 완전히 중지하는 것이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한 선결조건일 것이다.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이 결코 발전된 미래를 구축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일본 정부와 국민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평화적인’ 일본과 21세기 상생의 동반자 관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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