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젊은 피의 '열정 그리고 힘’이머신즈 성공 뒷편에는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정 철 당시 삼보컴퓨터 부사장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이머신즈 프로젝트를 창안하고 실천에 옮긴 주인공이 바로 정 박사다. 정 박사는 지금 삼보 부회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다.
나는 PC 디자인(내부 설계)에 관한 한 전 세계에서 두 사람의 천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현재 회장인 스티브 잡스와 정 박사다.
나는 1989년 여름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스물 아홉의 청년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전길남 교수가 다리를 놓았다. 전 교수는 "내 제자 중에 박사 학위를 끝내고 삼보에 가고 싶다는 인재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라"며 정 박사를 추천했다.
정 박사는 나를 만나 "앞으로는 컴퓨터가 출판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맡게 된다. 키보드를 두들겨 문장을 작성하는 것은 물론 편집 체제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글자 자체도 여러 종류로 만들어 쓸 수 있다. 이 부문은 우리가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으면 일본에 뒤질 지도 모른다. 일본이 먼저 한글문서 작성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 우리의 고유 문자도 일본 제품을 쓰지 않으면 안될 위험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글 처리에 관한 한 완벽한 기술을 개발하고 싶다. 폰트(Font·글자의 모양) 프로그램을 개발, 수 백 가지의 글자체를 쉽게 사용케 하고, 또 자유 자재의 한글 편집을 통해 광고문안과 공문서를 만들고 책도 편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싶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건 물론 새로운 스타일의 회사도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얘기는 이어졌다. "우선 사무실은 서울 교외의 경치 좋은 곳에 마련했으면 한다. 그러면 자연환경을 즐기면서 일할 수 있고 출퇴근 방향이 반대가 되니 도로에서 허비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 연구원들은 KAIST와 서울대를 나온 우수한 친구들만 뽑겠다. 그런 다음 회사 내에서 잠자고 밥 먹는 시설까지 만들어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마음껏 일해보고 싶다."
그는 재기가 번득이는 창의적인 과학도였을 뿐만 아니라 일을 성취해 내고자 하는 정열과 열의가 남달랐다. 또 전길남 박사에 따르면 사람됨이 훌륭해 따르는 후배와 친구들이 많았다. 실제 그는 이목이 수려하고 표정이 단아해 정감이 가는 미더운 청년이었다.
나는 정 박사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초 계획대로 서울 교외에 사무실을 마련하지는 못했으나 강남의 아담한 사무실에서 그와 친구들이 마음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곤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회사가 휴먼컴퓨터다. 89년 말이었다. 휴먼컴퓨터에는 당시 최고의 인재들이 모였다. 정 박사 말고도 KAIST에서 학위를 받은 임순범·한상기·허진호 박사가 있었고, 박승운 박사 등이 합류했다. 이들은 밤을 세워 가며 시스템 개발에 몰두했다. 새로운 기술을 창출한다는 자부심과 우리 글을 우리 손으로 다룬다는 애국심에 불타 있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폰트와 함께 인쇄편집용 소프트웨어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휴먼컴퓨터는 아쉽게도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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