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는 국회파행 엿새째인 2일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지난 달 28일 "한나라당은 차떼기당", 29일 "한나라당이 정부에 대한 좌파공세를 먼저 사과하라"고 연달아 공세를 펼친 뒤 4일 동안의 긴 침묵이다. 그러나 이 총리가 침묵의 버티기만 할 수는 없다. 국민 여론이 심상치 않고 열린우리당 내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이 총리측은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강경론을 내세운다. 측근들은 "총리가 먼저 사과할 것이라면 애초에 발언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먼저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외양과는 다른 속내가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이 총리는 1일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대정부 질문이 재개되면 의견표명을 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의견표명이 한나라당에 대한 사과는 아니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하지만 상황의 정리를 고려하고 있음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이런 고민은 미국 대선, 국보법 등 4대 개혁법안 등 중요한 현안을 놓고 마냥 국회 파행을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파행의 장기화는 결국 원인을 제공한 이 총리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이 총리 개인으로서도 이번 사태로 훼손된 이미지를 ‘결자해지’로 추스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모양새가 중요하다. 유감 표명을 했는데도 한나라당이 수용하지 않으면 스타일이 더 구겨지게 된다. 이 총리가 측근들에게 "정치는 상대방이 있는 것이니 지켜보자"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총리실 한 편에서 "한나라당 대응에 따라서는 상황은 다시 ‘확전’으로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퇴각의 명분과 모양새를 고려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 총리측은 이 부분에 대해 당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총리가 총대를 멨으면 당이 후속조치라도 제대로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정배 대표 주변에서는 역으로 "사고는 총리가 치고 수습은 왜 우리가 하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도 신경전이 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미니 3野 "국회 좀 열자" "총리 입장표명하면 한나라 없이도 등원"
"이해찬 총리의 입장 표명이 있으면 한나라당 없이도 국회에 참여하겠다."
국회 파행 엿새째인 2일 민주노동당, 민주당, 자민련 등 비교섭단체 야3당은 원내대표 회담을 갖고 이 같이 합의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결에 끌려만 다니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민노당 천영세 의원단대표와 민주당 이상열 원내수석부대표, 자민련 김낙성 원내총무는 이날 "적절치 못한 발언을 한 정부·여당이나 색깔론 등 정치공세를 펴면서 의사일정을 보이콧 한 한나라당 모두 국회 파행에 책임이 있다"고 양비론을 편 뒤 5당 원내대표 회담, 양당의 대 국민사과와 국회 정상화 등을 촉구했다.
천영세 대표는 "일단 양쪽의 대국민 사과를 기다리겠다"면서도 "그러나 국회가 빨리 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이 총리가 적절한 입장 표명을 한다면 한나라당이 거부해도 국회 일정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회담 후 우리당 천정배,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전달했는데 우리당은 반색한 반면 한나라당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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