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11월2일 영국 수학자 조지 불이 링컨에서 태어났다. 1864년 졸(卒). 후배 수학자이자 논리학자 버트런드 러셀에 따르면 불은 순수수학의 발견자다. 불은 그 순수수학을 ‘사고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논리학의 수학적 분석'(1848)에서 스스로 토대를 닦은 기호논리학을 논리대수(불 대수)로 심화·확장해 집대성한 책 제목이 바로 ‘논리와 확률의 수학 이론 밑바탕에 있는 사고법칙의 연구'(1854)였다. 수학사의 이 기념비적 저서를 통해 논리학은 수학 속에 완전히 포섭되었다. 오늘날 학교에서 수리논리학이나 집합론을 배우는 학생들은 저도 모르게 불의 ‘사고의 법칙'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나폴레옹전쟁 마지막 해에 하층계급으로 태어난 영국 아이에게 고등교육은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빈민 자녀들을 위한 내셔널스쿨에서 받은 초등교육이 불이 받은 정규교육의 전부였다. 그러나 불은 모교에서 보조교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혼자서 라플라스의 ‘천체역학'과 라그랑주의 ‘해석역학'을 습득했고, 막 창간된 ‘케임브리지 수학잡지'에 몇 편의 논문을 기고함으로써 영국 수학계의 일원이 되었다. 불은 34세에 퀸스칼리지의 수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런 급격한 ‘학문적 신분상승'은 수학계가 아니라면 일어나기 어려웠을 것이고, 지금 한국이라면 수학계에서도 일어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불이 오로지 자신의 학문적 천재만으로 영국 수학계의 중심부로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빈민학교의 평범한 보조교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라틴어과 고전 그리스어를 익혀야 했다. 이 고전어 학습이 불의 영어 문장에 어떤 품위를 부여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시간에 ‘사고의 법칙'에 더 충실했다면 그의 수학적 업적은 더욱 풍성해졌을 것이다. 아니, 혹시 라틴어를 모르는 ‘무식꾼'을 수학계가 아예 동료로 쳐주지도 않았으려나?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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