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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교교육 정상화가 먼저다

입력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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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대입 제도 개선안이 마침내 확정됐다. 일부 대학의 ‘고교등급제’ 적용과 고등학교의 ‘내신 부풀리기’ 파장은 한 달간의 소모적 논쟁과 상처뿐인 폭로전으로 번져 나갔다. 대입 전형 제도를 놓고 여러 단체가 저마다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하는 비리들을 지켜보면서 유감스러웠던 점은 서울 소재 몇몇 대학과 강남 지역 일부 고등학교의 문제가 마치 전국 모든 대학과 고교의 문제인 것처럼 확대재생산되고 있었다는 점이다.과연 한 나라의 교육 정책이 몇몇 대학과 서울 특정 지역 고교들 싸움에 휘말려 이처럼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일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새 대입시안이 채택되고 나면 과연 우리나라 대학들은 우수 학생을 선발할 수 없게 되고 고등학교에서는 내신 뻥튀기가 요란한 소리를 낼 것인가? 전국 210개 4년제 대학 가운데 수도권을 벗어난 대부분의 대학이 변별력 문제보다는 우선 당장 모집 정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이번에 내신 부풀리기를 한 일부 지역 고등학교의 문제로 인해 전국 2,080개 고교가 먹물을 뒤집어 써야 하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대입 제도 개선안이 공청회와 각 대학 총장 간담회, 그리고 시민단체 토론회 등을 거쳐 마침내 확정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다고 새 제도가 썩 만족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도 향후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올바로 설정했고 현행 대입 제도의 문제점을 상당 부분 보완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어떤 제도이건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 주기란 애당초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 문제는 더더욱 그렇다.

모르긴 해도 이번 최종안을 놓고 이해당사자들의 볼멘소리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을 접고 대입 전형 제도의 근간이 되는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 활력을 불어 넣는 생산적 노력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이쯤에서 우리 모두 대학이 어떻게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의 논쟁을 접어두고, 대학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고등학교가 어떻게 길러내야 할 것인지에 관해 좀더 깊은 고민을 했으면 한다. 대학이 그토록 원하는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고교 시절 사유를 통한 통찰력과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갖춘 다양한 인재를 제공받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고교 교육이 본래의 목적대로 살아 숨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장기적 관점에서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대입 제도에 맞추기 위해 천편일률적으로 운영되는 현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먼저 고등학교들이 나름대로 학교 특성에 맞게 교육을 시키고 그렇게 키워진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주객이 뒤바뀐 상태로 굴러가고 있다. 고교 교육이 대입제도에 맞춰지는 나라는 지구상에 우리뿐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대입 제도가 창의력과 자기계발능력 등 다양한 재능과 적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제 우리는 고교 교육 정상화 방안에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만이 새 대입 제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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