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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33> 美·유럽 시장서의 明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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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IT계의 선구자 이용태 <33> 美·유럽 시장서의 明暗

입력
2004.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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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미국 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 특히 반품 문제는 골칫덩이였다. 미국 정부는 소비자 권익을 철저하게 지켜준다.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해 사용하다 3개월 이내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제조 회사는 돈을 환불해 줘야 한다.PC장사는 이 환불 규정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PC는 보통 3~6개월이 지나면 새 모델이 나온다. PC를 쓰다 새 모델이 나오면 반품하고 최신 모델을 사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런 까닭에 PC는 다른 제품에 비해 반품률이 훨씬 높았다. 도처에 지뢰가 깔려 있었지만 삼보는 그래도 미국 시장에서 선방한 편이다.

1990년대 중반 무렵이다. 미국에 들렀더니 현지 책임자인 묵현상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서 삼보컴퓨터가 아주 잘 나간다. 이 기회에 뉴욕 맨해튼에 우리 회사 건물을 사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근사한 빌딩에 들어가 수위에게 장차 이 건물을 살 생각이 있어 둘러 보러 왔다고 했더니 군말 않고 안내해 주었다."

웃자고 한 얘기였지만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규모가 엄청나게 큰 미국 시장은 심심치 않게 기적을 만들어 내곤 한다. 그만한 꿈을 키워볼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러나 묵 사장의 꿈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반품 때문이었다. 물론 이 같은 난관을 한 두 번 경험한 게 아니다. 성공과 실패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우리는 미국 시장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하우를 쌓아갔다.

유럽 시장도 적극 공략했다. 86년 3월 독일 함부르크에 공장을 지은 뒤 89년 10월에는 영국 런던 교외에도 공장을 세웠다. 유럽 시장과 관련된 사연도 풀어내자면 한이 없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한다. 1995년 봄 프랑스에서 열린 에트레(ETRE) 회의에서 올리베티의 부사장을 만났다. 에트레는 세계적인 정보산업 컨퍼런스다. 당시 유럽의 PC 시장은 미국 회사를 제외하면 독일의 지멘스와 이탈리아의 올리베티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올리베티의 부사장에게 기술 교류 등 협력 방안이 있는지 찾아보자고 제의했다. 그 뒤 나는 기술자 두 명을 데리고 올리베티 본사를 찾아갔다. 이 회사는 PC말고도 통신과 가전 분야에서 많은 제품을 판매했다. 우선 PC 제품군을 살펴 보니 몇 가지 중요한 모델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을 우리가 개발, 생산해 공급하겠다고 했다. 교섭은 쉽게 진행됐다. 우리는 95년 11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올리베티에 PC를 공급, 유럽의 큰 시장을 확보했다. 얼마 후 IBM의 미국 본사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 컴퓨터를 샀다. 그들은 우리와의 협력에 크게 만족했다. 사업 확장 계획도 구체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97년 10월 IBM은 유럽 소비자시장(Consumer Market)에서 PC 사업을 아예 철수했다.

PC시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정부나 기업을 상대하는 걸 비즈니스 마켓(Business Market)이라 하고 개인이 가게에서 직접 사는 걸 CM이라 부른다. 그런데 IBM은 유럽시장에서만은 비즈니스 마켓만 지키고 CM은 중지했다. 이 일로 우리의 낙담도 컸다. 올리베티 마저 그 해 겨울 PC사업을 접고 말았다. 우리는 유럽시장 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짜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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