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시장의 ‘속도 경쟁 시대’가 저물고 있다. PC의 두뇌 격인 중앙처리장치(CPU) 생산 업체들이 3~4기가헤르츠(㎓)급의 초고속 제품 개발 대신 병렬처리와 64비트 등 새로운 기술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앞으로 PC를 구매할 때는 속도를 나타내는 숫자 못지않게 CPU의 다양한 기능에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의 CPU 생산업체 미국 인텔은 당초 2005년 출시 예정이던 4㎓ 클럭(clock) 속도의 펜티엄4 제품 개발을 전격 취소했다. 인텔은 또 7월부터 판매하는 펜티엄4 신제품의 모델명에 기존의 속도 표기를 없애고 ‘530’ ‘550’ 식의 제품 번호를 붙이기 시작했다. ‘클럭’이란 CPU의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다.
인텔의 최고경영자 크레이그 배럿은 "더욱 빠르고 강력한 CPU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高)클럭 외에도 다른 성능 요소가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경쟁사 AMD의 경우 3년 전부터 속도 대신 ‘성능수치’(performance rate)를 기준 삼아 ‘2000+’ ‘3000+’라는 식으로 CPU의 성능을 표기하고 있다.
2㎓, 3㎓의 기념비적 제품을 내놓으며 속도 경쟁을 주도해왔던 인텔의 변화는 주목할 만 하다. 66메가헤르츠(㎒)짜리 ‘펜티엄’의 등장 이후, 지난 10여년간 PC 발전을 주도해온 ‘속도의 신화’가 막을 내린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PC 제조사들은 대신 병렬처리와 64비트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병렬처리는 동시에 두 가지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기술로, 똑같은 클럭 속도라도 두 배 이상의 체감 성능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퍼스레딩’(hyper-threading)과 칩 하나에 두 개의 CPU가 내장된 ‘듀얼코어’(dual core) 등이 대표적인 병렬처리 기술이다.
AMD가 주도하고 있는 64비트 호환기술도 첨예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64비트 운영체제와 결합하면 기존 32비트 기술보다 역시 두세 배 높은 효율성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MS)의 64비트 윈도 출시가 늦어지면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다.
이러한 변화는 10년 전 보다 PC의 사용환경이 급변한데 기인한다. 본래 업무용 기기로 탄생했던 PC는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진화하면서 게임과 홈시어터 등 멀티미디어 성능이 강조되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이런 환경에서 PC는 대량의 메모리를 소모하며 그래픽·음악·인터넷을 담당하는 주변기기와 동시다발적인 상호작용이 요구되기 때문에 빠른 속도만으로는 성능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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