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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이해찬 총리의 초라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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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이해찬 총리의 초라한 선택

입력
2004.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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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 같지 않다.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태풍의 눈이 되기를 자청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최근 유럽 순방에서 특정 신문과 한나라당을 비판해 구설에 올랐던 이 총리는 그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를 강하게 되받아침으로써 정국 경색을 부르고 있다."총리는 베를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역사가 퇴보한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그런 오만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안택수 의원이 따지자 이 총리는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고 ‘탄핵당’ 아니냐"고 맞섰다. 여야 의원의 싸움도 아니고, 총리가 이렇게 나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야당과 언론은 이 총리의 속셈을 여러 갈래로 분석하고 있다. 헌재 결정으로 위축된 여권의 사기를 높여서 국가보안법 등 4개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려는 전략이라는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의 역할 분담으로 정국 운용을 주도하고 더 나아가 차기 대선에 도전하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 등이 유력하다.

단순히 ‘깐깐한 성격’ 탓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일부 신문과 야당을 비난한 것은 말 실수가 아닌 소신이므로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고, 국회든 어디든 할 말 다 하는 것 역시 그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이 총리에 대한 실망을 누르기 힘들다. 그의 ‘노선 변화’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총리도 결국 여권의 돌격대장들 중 한 사람이 되었는가. 그 많은 강성 개혁파들 중 하나가 되어 노무현 대통령의 총대를 메고 악역을 대신하겠다는 건가. 그의 선택이 소신에 의한 것이라면 더 실망이다.

잦은 돌출발언으로 파란을 일으켜 온 대통령과 성급한 개혁론으로 혼선을 빚는 여당 사이에서 이해찬 총리는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5선의 관록을 가진 운동권 세력의 맏형답게 누를 것은 누르고 북돋울 것은 북돋우면서 개혁의 깃발이 아닌 내실에 치중하기를 국민은 원했다.

그는 여권 핵심에서 상식과 논리가 통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의 하나였고, ‘실세 총리’로서 거침없이 방향을 잡는 것처럼 보였다. 국회의원들의 허술한 질문에 대응하는 총리의 깐깐한 모습이 신뢰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유럽 순방 중에 일부 신문과 야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한 발언이 전해지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기자들과 식사하며 술이 오가는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하지만, 총리의 말로는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그는 마땅히 자신의 발언에 대한 유감 표시를 했어야 한다. ‘소신’이므로 사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는 지금 여당 의원이 아니라 국무총리다. 여권의 사기를 걱정하는 운동권의 맏형이기 전에 분열로 갈갈이 찢긴 나라를 걱정하는 국무총리가 돼야 한다.

총리가 야당을 과격하게 비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한나라당이 ‘차 떼기’를 했다는 것은 새로운 시비거리도 아니다. 그것은 총리의 표현대로 ‘의원 여러분이 잘 아시고 국민들이 다 아시는 사실’이다. 그런 과거를 새삼 들춰내어 비난하는 것은 총리의 품위를 해칠 뿐이다.

열린우리당의 과거는 자랑스러운가. 어떤 당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와 승리했다면 그 당을 지키는 것이 상식이고, 국민과 당에 대한 도리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승리하자마자 민주당을 버렸다. 새 당을 만드는 것이 새 정치인가. 야당이 그런 과거를 들춰내어 시비거리로 삼는다면 정치가 앞으로 가겠는가.

이해찬 총리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젊은 시절 운동권에 몸을 던졌던 열정과 5선의 정치 경험을 살려서 노무현 정부가 기필코 성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그가 선택한 길은 민주화 세력의 명예를 드높이는 길이 아니다. 그는 앞장서서 과격하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건 아니야"라고 내부를 향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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