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난히 나무의 가을빛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길을 가다 만나는 줄지어 선 가로수들이 새삼스럽게도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느티나무의 단풍빛은 그저 갈빛이려니 했지만 노란색에서 주홍빛, 황토색에서 갈색을 지나 붉은 빛깔까지 정말 다양한 색깔들로 물들어 있습니다. 모처럼 좋은 가을조건을 만난 나무들은 자신의 몸 속에 감추어 놓았던 색소들을 개성 넘치게 마음껏 발현하고 있는 듯 합니다. 100m를 걸어도 도무지 똑같은 빛깔이 없으니 그 정도 각각의 독특함을 가진다면 그저 한 몫에 느티나무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처럼 느티나무도 각각 이름을 불러주면 너무 복잡할까? 전부는 불가능하겠지만 특별히 내 마음을 잡는 나무들이라도 내 느티나무로 만들어 이름을 지어줘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왜 같은 느티나무인데도 각기 색깔과 모양이 다르냐고 물으면, 너와 나는 인간인데 왜 다르냐고 되물을 수 밖에 없겠습니다.그렇게 아름다운 가로수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얼마 전의 유럽 출장길이 생각났습니다. 식물공부가 직업인지라 어느 도시에 가도 유적보다 나무들이 먼저 보이기 마련입니다. 예전엔 선진국에 가면 도시마다 잘 가꾸어진 가로수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느새 이땅에도 멋진 가로수들이 가득가득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앞서간다’ 싶어 한참 뿌듯하였습니다. 청주의 양버즘나무 가로수나 담양의 메타세콰이아 가로수가 늘어선 길은 참으로 명물입니다.
가로수를 이야기하면 받는 질문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왜 우리나라 가로수는 다양하지 않고 은행나무하고 양버즘나무 즉 플라타너스 뿐이냐는 것이지요. 그 이유는 이 나무들이 척박하기 이를 데 없고 지극히 오염된 도시환경에도 아주 강하다는 사실입니다. 파리 몽마르트언덕의 마로니에 가로수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리나라에서 잘 자랄 수 있는 곳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파리에서조차 양버즘나무로 가로수를 바꾸고 있으니까요.
다만, 아쉬운 것은 오염도가 높은 지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적한 지방도로까지 다양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느 고장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곳을 들어가는 길목의 가로수, 특히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가로수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모두 바꾸지"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도 쉽지 않습니다. 가로수길이 정말로 잘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묘목을 가꾸어 심고 자리 잡기까지 20년이 소요됩니다. 어떤 나무가 그 지역의 가로수로 적합한지 증명되지 않은 채, 새로운 나무를 심었다가 만일 낭패를 당하더라도 돌이키기에 너무 어렵다는 것이지요.
한 예로 복자기나무는 빨리 자라고 가을에 단풍빛이 가장 고와서 일부 도로변에 심겨졌습니다. 그런데 숲에서 살 때 그리 곱던 나무는 도시로 나가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습니다. 밤과 낮도 없고 일교차도 크지 않은 오염된 공기 속에서 제대로 빛깔 한번 내지 못하고 낙엽을 떨구었습니다. 가로수의 선정은 순간적인 선택이 아니라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가르쳐줬습니다.
또 하나 많이 받는 질문은 왜 양버즘나무 줄기를 처참하리만치 짧게 잘라 버리냐는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무는 땅 위에 가지가 펼쳐진 크기만큼 땅속에서도 뿌리가 뻗어내려야 안전합니다. 도시의 땅속에는 흙이 없고 온통 시설물이지요. 뿌리 없이 지상부만 크게 자라면 바람이 불거나 약간의 물리적 자극만으로도 넘어집니다. 길가는 사람이나 자동차에게 큰 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작게 만들어 줘야 합니다. 물론 나무가 크게 자라면 자신의 가게 간판이 가린다는 무성한 민원도 큰 몫을 하구 있구요.
계절이 가버리기 전에 가로수에 물이 들고 낙엽이 떨어진 거리를 걸어보십시오. 고운 빛깔의 잎새 하나 주워 들고 돌아와 책갈피에 넣어두고 떠나려는 계절을 붙잡아 둘 수 있게 말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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