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10월30일 프랑스 영화감독 루이 말이 튐리에서 태어났다. 1995년 졸(卒). 루이 말은 이른바 누벨바그(새 물결) 영화의 거장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파리고등영화학원(이데크)을 졸업하고 로베르 브레송과 자크 이브 쿠스토의 조감독으로 일하며 영화계에 뛰어든 그는 개인들 사이의 관계, 사회계급들 사이의 관계에 예리하고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며 3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데뷔작 ‘사형대로 가는 엘리베이터’(1957)에서 이미 루이 말의 재능은 도드라졌다. 이 영화는 직장 상사의 부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상사를 살해하는 데 성공하지만, 살인 현장에 두고 온 로프를 가져오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전원이 꺼지는 바람에 갇힌 뒤 우여곡절 끝에 범죄 사실을 들킨다는 이야기다. 루이 말은 이 데뷔 작품으로 단번에 프랑스 영화계의 총아가 되었고,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눈길까지 끌어 그 뒤 40년 가까이 프랑스와 미국을 오가며 영화를 찍게 됐다.
루이 말은 그 이듬해 유부녀와 청년의 염사(艶事)를 그린 ‘연인들’로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며 ‘가슴의 숨결’(1971), ‘프리티 베이비’(1978), ‘데미지’(1992) 등으로 이어질 에로스 탐사의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역사와 사회를 향해 늘 열려 있었다. 지하철 파업 기간 중에 파리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자지라는 이름의 소녀가 만나는 낯설고 기괴한 인물들을 통해 삶의 다양한 속살을 보여준 ‘지하철의 자지’(1960·원작은 레몽 크노의 소설), 1944년 독일군 점령 당시의 파리 근교 수도원을 배경으로 유대인 박해의 그늘과 전쟁의 비참을 그린 ‘굿바이 칠드런’(1987·이듬해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인도의 빈곤을 다룬 다큐멘터리 ‘캘커타’(1969)와 ‘인도의 유령’(1969) 같은 영화들이 그 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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