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11월2일)가 며칠 남지 않았다. 냉전 이후 유일 강대국으로, 전세계에 걸쳐 ‘제국’을 구축해가는 미국의 새 지도자가 누가 되느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연임에 성공하느냐, 민주당의 존 케리 후보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큰 영향을 받을 게 분명하다. 미국 대선을 입체적으로, 좀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 되는 책들을 미국정치를 전공한 안병진 창원대 교수가 소개한다.◆워싱턴의 ‘게임의 법칙’을 읽어라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전을 관찰할 때 보통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통해 선거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누구도 선거전에서 어떤 정치 컨설턴트가 개입하는가를 중요한 변수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미국의 선거전을 이해하려고 하면 미묘하게 변화하는 선거전의 동학(動學)을 거의 놓치게 된다.
예를 들어 공화당,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한국의 언론들은 발표된 수십 쪽의 정강 정책을 놓고 씨름하며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예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워싱턴 내 인사이더들은 거의 누구도 그러한 것에 아까운 시간을 쏟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강정책은 어차피 각당 열성 지지자 층을 위한 팬서비스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개개의 이벤트를 배치하는 각 캠페인 사령탑의 문제의식과 전략계획의 변화를 생생히 이해하는 것이다.
다행히 2003년 출간된 ‘워싱턴 퍼즐:세계 정치를 지배하는 워싱턴의 작동 방식’(김윤재 지음·삼우반 발행)은 미국선거에 대한 한국 최고의 선거컨설턴트 책답게 우리에게 워싱턴의 주요 행위자와 작동방식의 한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이 책이 시점상 현재의 미 대선전을 다루지 않고, 또 선거에만 전적으로 지면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변수인 칼 로브 공화당 정치자문관과 밥 슈럼 민주당 정치자문관 등 주요 행위자를 유리알처럼 해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칼 로브는 여전히 부시 대통령의 국내 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것이 확실시되므로 매우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하다.
◆미디어 선거전이 승패의 중요한 관건
전 세계에서 미국은 미디어 선거전의 기술이 가장 발전된 나라이다. 정치광고전은 미디어 선거전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다. 그 중 특히 네거티브 광고의 효력은 막대하다. 지난 몇 차례 한국 대선을 통해 신화화된 가설은 네거티브 광고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는 더더욱 신화일 뿐이다. 현재 투표일을 며칠 앞둔 양 진영은 공포 효과를 가진 네거티브 광고를 승부처가 되는 주에 정밀 폭격하듯이 퍼붓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전쟁에 관심이 큰 독자라면 미국에서 미디어 정치의 최고 권위자인 케슬린 홀 재미슨 교수의 ‘대통령 만들기:미국 대선의 선거전략과 이미지 메이킹’(원혜영 옮김·백산서당 발행)을 권하고 싶다. 비록 1996년 이전의 선거전을 다루고 있지만 미디어 선거전의 역사를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풀어낸 이 책은 현 선거전의 전개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2000년 대선과 비교 감상하기
이번 선거의 의미는 2000년 미국 대선과 비교하는 역사적인 시야를 가질 때 더 잘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손병권 중앙대 교수 등이 공저한 ‘2000년 미국 대선:민주주의의 위기인가’(오름 발행)는 유익한 시야를 제공해준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미국정치의 양극화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2000년 당시 양 후보의 열성적 지지자 층, 정치 엘리트 층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전투적으로 대립한 것은 이번 선거전의 열기를 설명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향후 누가 집권하든지 집권 후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시사해준다. 그런 점에서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가 최근 "선거가 끝나면 정쟁도 끝"이라고 전망한 것은 2000년에도 오류이고 이번 선거에서도 희망사항일 뿐이다.
◆백악관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보라
밥 우드워드는 부시 대통령이 재선 이후 외교적으로 더 온건해질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매우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가진 부시 대통령의 스타일과 주변 측근의 성향, 그리고 변화된 9·11 이후 세계 안보 현황을 볼 때 우드워드의 낙관적인 예측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이후 북한을 더 강경하게 압박하며 케네디의 쿠바 미사일 위기 모델에 근거한 봉쇄 정책, 나아가 공습을 통한 해결을 시도할 가능성마저 있다.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는 이들에게는 우드워드의 백악관 관찰기인 ‘공격 시나리오’(김창영 옮김·따뜻한손 발행)나 마이클 린드의 ‘부시 메이드 인 텍사스:신보수주의자와 남부세력의 미국 정계 접수’(임종태 옮김·동아일보사 발행)를 권하고 싶다. 부시 대통령의 성장 배경과 백악관 주변을 유리알처럼 들여다 본 이 두 관찰기는 향후 부시 대통령의 행보가 국내외에서 여전히 매우 강경 보수주의적일 것임을 예측하게 한다.
◆케리의 경력에서 집권 후가 보인다
한국의 대부분 언론에서는 미국 대선 후보 텔레비전 토론에서 케리 후보의 북핵에 대한 강경한 발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때 보다 선거전이 과열되어 있어 현재의 선거 수사만으로 양 후보의 집권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부정확하고 무의미하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누가 집권하든지 집권 직후 자신들의 정책을 재평가하고 새 방침을 세울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간의 행적을 보면 케리가 집권할 경우 군사주의적 해결방식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부시 대통령 보다는 다자주의적이고 예방외교노선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케리 후보는 과거 베트남 수교의 돌파구를 열었던 성과를 가지고 있고, 클린턴 행정부의 기본 노선에 공감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보조로 현 위기의 돌파구를 열 가능성이 높다.
케리 후보는 지금까지 미 상원에서 상당한 활약을 펼쳐왔지만 한국 언론들이 미 의회에 대한 관심이 워낙 부족한 탓에 한국에는 그에 대해 알려져 진 게 많지 않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이 본 존 F 케리’(손정인 옮김·지식의날개 발행)가 번역되었다. 이 책은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자란 클린턴 전 대통령과 다른 케리의 배경, 그의 강인한 추진력, 베트남과 화해했던 감동적인 리더십, 하지만 양다리 걸치기식의 애매모호한 태도 등을 균형있게 보여주고 있다.
더 이론적으로 케리 후보 같은 민주당 자유주의자들의 향후 외교노선을 전망하려면 이삼성 가톨릭대 교수의 ‘세계와 미국: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한길사 발행)이 도움이 된다. 특히 이번 주에는 파이낸셜 타임스 특파원을 지낸 에릭 프라이가 지은 ‘정복의 역사 USA’(추기옥 옮김·들녘 발행)와 역시 언론인 출신으로 지금은 하버드대에서 인권과 외교정책을 강의하고 있는 사만다 파워의 ‘미국과 대량학살의 시대’(김보영 옮김·에코리브르 발행)가 나와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퓰리처상을 받은 사만다 파워의 책은 노암 촘스키의 민주당 자유주의자에 대한 지나친 개입주의 비판(이 시각은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끌고 있다)과 정반대의 지점에서, 너무 적고 뒤늦은 개입주의의 한계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승부가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몇 개월 전부터 적잖은 한국의 지식인들에게서 이미 승부가 결정되었다는 ‘진단’을 들어왔다. 하지만 선거가 며칠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변수는 수없이 널려 있다. 예를 들어 승부처가 되는 몇 개 주에서 제3당 후보인 랠프 네이더가 몇 표를 획득할 것인가가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아니 만약 투표로 결정 나지 않는다면 대법원장인 렌퀴스트가 병상에서 며칠 만에 회복할 것인가가 이후 법정 투쟁에서 역사적인 승부를 결정지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미국 대선은 마치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야기한다는 카오스 이론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선거다. 차라리 앞서 소개한 모든 책을 다 잊고 과학 코너에서 카오스 이론에 관한 책을 뒤적거리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안병진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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