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한국의 PC 시장은 5파전 시대로 접어들었다. 삼보가 빅4(삼성 금성 대우 현대)와 힘겹게 싸우는 형국이었다. 삼보는 자금과 인지도, 판매망 등 모든 면에서 대기업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PC만은 최대 시장 점유율과 경쟁력을 유지했다. 이는 오로지 뛰어난 기술력 덕분이었다.우리는 PC 전문업체로서의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아무리 빅4라도 쉽게 따라 잡을 수 없었다. 대기업의 덤핑 공세가 가장 고통스러웠지만 삼보는 언제나 한발 앞서 신제품을 내놓았다. 그만큼 경쟁 업체보다 비싼 값으로 컴퓨터를 팔 수 있었다.
빅4는 미국에 대해서도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과감하게 시장 개척에 나섰다. 대우전자는 재미 동포인 강모씨에게 PC 개발을 맡긴 다음, 미국의 영업 회사인 리딩 엣지(Leading Edge)를 통해 컴퓨터를 판매했다. 대우는 단시간 내 미국 시장에서 7%의 점유율을 확보, 사업기반을 닦는 듯 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큰 손해를 보고 미국 시장을 접었다.
현대도 특유의 공격적인 경영을 무기로 미국 시장에서 엄청난 물량공세를 폈다. 한 때는 7% 정도의 미국시장을 점유,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현대도 상처만 남긴 채 미국 진출 작전을 중단하고 말았다.
두 회사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는 큰 차이가 없다. PC라는 상품은 모델의 수명이 매우 짧았다. 그런데 두 회사는 이에 대응하는 노하우를 잘 몰랐다. 지금은 정도가 훨씬 더 심하지만 당시에도 PC 한 모델의 시장 수명은 길어야 6개월에 불과했다. 3개월마다 새 모델을 내놓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다른 제품에서와 같은 속도와 방법으로는 이처럼 숨가쁘게 돌아가는 시장에서 도저히 견뎌내기 힘들었다.
삼성은 이들 보다 고급 전략을 택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 나름대로 미국 시장을 연구했다. 그런 뒤 1995년 7월 미국 시장에서 판매고 5위였던 AST를 인수했다. AST는 이미 미국에서 제품 브랜드가 뿌리를 내렸고 판매와 애프터서비스(A/S)망도 잘 갖춰져 있었다. 삼성은 AST만 잡으면 반은 성공한 것으로 여긴 듯 했다. 한국에서 물건만 제대로 만들어 내면 판매는 보장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우와 현대보다는 한단계 높은 차원의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 전략도 결국은 실패했다. 삼성은 훨씬 큰 손실을 입은 뒤 AST를 포기해야 했다.
삼보는 설립 초기 한국 최초로 마이크로 컴퓨터를 수출했다. 한 때는 미국 컴퓨터랜드에 대량 납품, 대박을 터뜨릴 기회도 맞았다. 또 엡손이 미국 시장에 컴퓨터를 팔면서 100% 우리 제품을 사갔기 때문에 여러 차례에 걸쳐 상당량의 PC를 미국에 수출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삼보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삼보 브랜드의 PC를 미국 시장에 정착시키기 위해 온 정성을 쏟았다.
그 일은 무척 힘들었다. 우리는 삼성이나 대우나 현대처럼 물량 공세를 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우리 힘에 맞는 방법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그것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신제품을 누구보다 빨리 내놓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는 PC를 본업으로 삼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제품 개발에 적응이 돼 있는 상태였다. 문제는 다른 데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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