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명 및 존엄성을 절대시하는 인문주의적 학풍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생명복제 등 유전공학을 옹호, 독일 지성계에 충격을 주었던 페터 슬로터다이크(57·사진) 칼스루에 조형대 총장이 한국을 방문해 2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올해로 8회째인 한국철학회 다산기념철학강좌에 초청돼 방한한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1983년 발간한 ‘냉소적 이성에 대한 비판’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철학자다. 그는 특히 99년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들’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거두 위르겐 하버마스의 제자들과 격렬하고도 감정적인 논쟁을 벌이며 "비판이론은 죽었다"고까지 선언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그는 고전적 휴머니즘과 인문주의적 교육을 통해 인간의 야수성을 길들여온 프로젝트는 실패했다며 그 대안으로 유전공학을 통해 엘리트를 선별하고 배양함으로써 미래 사회의 진보를 이끌어갈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하자는 생각의 단초를 제시했다.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생명공학에 대해 불안만 가질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갖고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는 "생명복제를 반대하는 종교계 등에서는 수정 이전 줄기세포 단계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유아적 발상"이라며 "심지어 인간의 유전병도 하느님의 선물로 여기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자학적 발상이 아닌가. 생명공학을 통해 유전적 고통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고 반문했다.
최근에는 세계화와 관련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철학적 관점에서 점검하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그는 미국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2차 대전을 전후해 유럽 국가들의 일방적인 영역 확장의 역사가 끝나고 세계의 역학구도가 평형을 찾아가고 있으나, 미국은 이 같은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며 군사적 기초 위에서 일방주의를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수정궁:자본주의적인 안락과 테러리즘’을 주제로 강연한 슬로터다이크 교수는 ‘지구화의 완성:지구라는 기호의 승리’(30일 오후2시·대전 한남대) ‘응축불가능성:지역의 재발견’(11월1일 오후3시·대구 계명대) ‘미국은 예외인가:어떤 유혹의 해부’(2일 오후3시·서울대) 등 모두 4차례 강연을 한다. 방한에 맞춰 그의 대표 논문 3편을 번역한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한길사)과 그의 생명복제 논쟁을 이진우 계명대 교수 등 국내 학자들이 분석한 ‘인간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문예출판사)도 나왔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사진 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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