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간첩’ 이후 2년 반의 시간이 흘러, 한석규는 '주홍글씨'의 비열한 형사반장이 되어 돌아왔다. 언제부터인가 한석규는 스릴러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푸근한 미소와 심야방송 DJ 같은 목소리의 남자는 이젠 없다. 그는 미궁에 빠지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으며 어느새 치정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주홍글씨’의 관건은 한석규가 아니라, 최근 들어 한국영화가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는 스릴러라는 장르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풀어냈는가의 문제다. 가장 폼이 나는, 하지만 조금만 어긋나면 전체가 어그러져 보이는 이 장르의 위험한 속성 앞에서 ‘주홍글씨’는 아슬아슬하지만 그런대로 안정적인 줄타기를 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마치 ‘쎄븐’처럼) 인간의 본질과 선악 혹은 욕망의 테마로 조금씩 접근한다. 변혁 감독의 섬세한 연출에 나름대로 반전도 있고, 클라이맥스도 강렬하다. 그럼에도 뭔가 허전함이 남는 건, 과잉된 그 무엇 때문은 아닐까? 과유불급.'이프 온리'는 전형적인 ‘여성용 가을 멜로드라마'다. 지금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다는, 자명하지만 늘 잊고 살았던 진리를 아주 찡하게 전달한다. 뮤지션 여자와 비즈니스맨 남자. 동거중인 이 커플은 요즘 조금씩 권태기를 맞이하는 듯하다. 항상 그렇듯이(!) 문제는 일밖에 모르는 남자의 무관심. 그들은 그렇게 멀어져 가는 것일까? 그들의 사랑을 다시 불붙게 할 방법은 과연 없는 걸까? 그러려면 작은 기적이 필요하다. ‘반복되는 하루'라는 시간의 틀 안에서 전개되는 ‘이프 온리’는, ‘그녀에게 악몽 같았던 하루'와 ‘그녀에게 선사할 최고의 하루'를 교차시킨다. 결말을 밝힐 순 없지만 그 하루(들)의 끝은 극과 극으로 갈리고, 그럼으로써 영원한 사랑이 된다. 지고지순.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미덕은, 평범한 틴에이저 소녀가 하루 아침에 공주가 되면서 겪는 해프닝을 전형적이지만 별 무리 없이 풀어냈던, 소박하면서도 익숙한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이 영화의 속편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전편에서의 즐거움과 판타지를 같은 질량만큼만 던져주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공주님의 두번째 일기는 지나치게 ‘읽는 사람'을 의식했다. 전편에서 공주가 되었던 주인공 미아는 ‘프린세스 다이어리 2’에서 여왕의 자리에 올라야 한다. 미혼자는 여왕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것이 왕실의 법도. 여기서 한번 엉킨 스토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한다. 좀더 성숙해진 앤 헤더웨이를 바라보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지만, 전체적인 톤은 우왕좌왕.
조금은 생경한 제목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진 않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렇게 내버려두기엔 조금은 아까운 영화다. 우연히 ‘조제'라는 이름의 장애우(휠체어에 앉은)를 알게 된 츠네오는, 그 독특한 소녀에게 조금씩 빠져들어간다. 평범한 러브스토리? 그러면서도 이 영화가 특이한 건, 그 사랑을 바라보는 거리의 절묘함이다. ‘조제…’는 너무 다가가지도 너무 멀리 떨어지지도 않는다. 담담히 받아들일 운명은 받아들이고 한편으로는 현실에 충실한 관계를 보여주는 이 영화는, 사랑은 불완전하기에 아름답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꽃미남' 츠마부키 사토시는 일본의 강동원? 백문불여일견.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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