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으로 이적한 재정경제부 출신 관료가 공정거래법 저지를 위해 연일 대 정부 포문을 열고 있다. 주인공은 재경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에서 서기관으로 일했던 삼성금융연구소 이상묵(사진) 상무.그는 ‘전쟁 대비론’과 ‘정부의 월가 맹신론’ 등 각종 논리를 개발하며, 금융계열사 의결권 축소 등을 추진 중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상무는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열린 포럼’에서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유행처럼 수용한 주주자본주의가 당국자들의 무지로 기형화하고 있다"며 정부의 재벌정책을 맹공했다.
환란이후 정부가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허용한 취지는 경영을 잘하게 유도하자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결과는 경영권 방어에만 몰두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무는 "이는 정부 당국자들이 월가의 주주자본주의를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주주자본주의의 산실인 미국 정부도 기업의 투자와 성장을 촉진시키는 범위 안에서 월가의 주장을 걸러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이나 국제기구가 자국에서는 시행하지 않는 정책을 한국에 요구하는 것은 자국 투자자들과의 이해관계 때문"이라며 "외국인들은 한국의 정책 당국자들이 이를 여과 없이 수용하는 것을 뒤에서 비웃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상무는 25일 국회 주최 공정거래법 공청회에서도 "국방력을 튼튼히 하는 것은 전쟁 발발 확률이 높아서가 아니라, 발발하면 그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이라며 "삼성전자도 언제 M&A를 당할지 모르는데 공정거래법 때문에 퇴로가 꽉 막혀있다"고 주장했다.
재경부 재직시절 대우의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등 재벌정책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 상무는 ‘친정’을 향한 공격이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내 생각이 변한 게 아니라, 초기에는 옳은 방향이었던 정책이 지나칠 정도로 경도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란 직후 재벌규제 초기에는 국가경제적으로 편익이 훨씬 많았지만, 지금은 비용이 훨씬 많을 정도로 규제정도가 지나치다"며 "이는 정책 담당자들이 자신이 입안하는 규제가 기업과 시장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 상무는 경제 관료들이 환란의 주범으로 몰리는 데 실망해 99년 7월 옷을 벗은 뒤, 대우로 옮겼다가 지난해 2월 삼성금융연구소에 스카우트됐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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