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이 복역한 소년범 출신 무기수가 보호관찰심사위원회가 처음 실시한 가석방 실질심사를 통해 새 삶을 살게 됐다.18세에 강도살인죄로 기소돼 19년 1개월간의 긴 수감생활을 끝내고 30일 가석방을 앞둔 무기수 정모(38·원주교도소)씨. 그는 1983년 공범 4명과 함께 데이트 중이던 30대 남자를 무참히 살해하고 함께 있던 여성마저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며, 그 동안 모범적인 수감생활로 다섯 번이나 가석방 심사대상에 올랐으나 번번이 기각됐다. 가석방 심사가 서류심사 방식으로 운용돼 왔기 때문에 심사위원 누구도 ‘흉악범’의 꼬리표가 붙은 그에게 쉽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8일 서울고검에서 열린 여섯 번째 가석방 심사는 달랐다. 서울보호관찰심사위원회가 89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정씨에 대한 가석방 심사를 위해 당사자와 보호자, 담당교도관 등을 불러 진술을 듣는 ‘실질심사’를 한 것.
이 자리에서 정씨는 "처음에는 가족과 단절돼 좌절도 했지만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많은 반성을 했으며 출소하게 된다면 목회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담당 교도관도 "정씨는 벽돌쌓기 기능사 1급 자격을 취득하고 전국기능대회 금상을 수상하는 등 착실히 수감생활을 해 왔으며, 8년 전부터 교제해 온 상담자원봉사자 김모(36)씨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라고 그의 변화된 모습을 증언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된 정씨와의 직접 대면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심사위원회는 8명의 심사위원 중 7명의 찬성으로 정씨의 가석방을 허가했다. 무기수의 경우 유기징역으로 한 차례 감형한 뒤 가석방하는 관례에 비추어 정씨의 가석방은 파격적이다.
심사위원장인 박영수 서울고검 차장검사는 "심사위원 가운데 실질심사 이후 가석방 쪽으로 마음을 바꾼 사람이 적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획일적인 서류심사에서 벗어나 가석방 신청자와의 직접 대면을 늘려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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