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을까?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한 정치권, 특히 정부 여당의 반응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먼저 국정을 책임진 정부의 대응부터 살펴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헌재 결정이 나온 날 이를 수용하겠다는 명시적 언급은 뒤로 한 채 "(수도와 관습헌법 연계는) 처음 듣는 이론이다"고 하더니 26일 국무회의에서는 "국회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 질서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최후의 ‘헌법 지킴이’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더구나 헌재 덕에 탄핵의 사지(死地)에서 생환한 바 있는 노 대통령이 헌재결정을 흔쾌히 수용한다는 의사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일부 중도파들은 헌재결정을 일단 수용한 뒤 대안모색에 나서자고 하지만 당 대표를 비롯한 대다수는 헌재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충청권 일부 의원들은 헌재 탄핵론까지 거론했다.
더욱 문제는 정부 여당이 이번 사태가 초래된 근인(根因)을 따져볼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이전문제가 헌재 소송으로까지 번진 과정은 ‘참여정부’ 정치력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줬다. 여당은 부정하겠지만 당초 수도이전 대선 공약은 ‘충청권 표 획득’이라는 노림수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것이었다. 이 절묘한 공약이 먹혀 충청표를 과점함으로써 여당은 대선과 총선에서 승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불거졌다. 여당은 이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서 이겼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야당 등의 반발을 무시한 채 행정수도 이전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였다. 여당은 심지어 야당마저 충청표를 의식해 울며 겨자먹기로 특별법에 찬성한 약점을 적절히 활용하기까지 했다. 대선·총선의 승리와 지난 국회에서의 여야합의로 이미 국민의 동의를 받았다는 오만에 함몰된 여당은 정부가 밀고 나가면 국민들은 따라올 것으로 오판했다. 야당의 반발과 일부 보수언론의 공세를 참여정부를 흠집내기위한 정략적 발상이라고 치부해 아예 무시했다. 이미 수차례의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 국민의 과반수는 수도이전에 반대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수도권 과밀화가 왜 문제인지, 지역·경향간 갈등을 해소하는데 지역균형발전이 왜 유의미한 지에 대해 차근히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소홀했다. 서울 강남일대에는 "수도를 옮기면 집값이 급락한다"는 자극적인 말이 횡행하는 데도 누구 하나 이를 잠재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여당이 4대 개혁입법에 올인한 사이 여론은 날로 악화해가고 있었다. 헌재 결정기일에 접근할 수록 수도이전 반대 여론은 더 커져 가고 있었다. 이러한 여론동향은 어떤 의미에서건 헌재의 위헌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정책을 추진하다 결국 혼쭐난 과거 정부의 실책을 잘 알고 있을 여당이 타산지석의 교훈을 벌써 잊었던 걸까.
정부 여당은 이번에 값비싼 대가를 치른 만큼의 학습효과를 얻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야당과 국민을 아우르지 않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우쳐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의 언급대로 ‘국회 입법권의 무력화’라는 수모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여론뿐 아니라 헌재로부터도 또 다시 쓴맛을 보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윤승용 정치부장 aufheb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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