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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부흥에 평생 ‘우리시대 상록수’/성천 유달영 선생 별세 수필가로도 명성…무궁화 보급에 힘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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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부흥에 평생 ‘우리시대 상록수’/성천 유달영 선생 별세 수필가로도 명성…무궁화 보급에 힘써

입력
2004.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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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표적 수필가이자 농학자인 성천(星泉) 유달영(柳達永)선생이 27일 오후 5시56분께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경기 이천출신으로 일제시대 양정고보와 수원 고등농림학교(서울대 농대 전신)를 졸업한 고인은 한 평생을 농촌계몽과 부흥운동에 바쳤으며 지성인을 위한 생활교육에도 앞장선 선각자였다. 30년대 농촌계몽운동에 참여 ‘상록수’의 모델이었던 최용신과 연대해 가난에 허덕이는 농촌살리기에 힘을 썼으며 1942년 김교신 함석헌 장기려 등과 함께 성서조선사사건으로 인해 일제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했다.

해방이후 서울대 농대(원예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농학의 개척자로 후진양성은 물론 재건국민운동을 주도하는 등 사회운동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특히 고인은 피천득 등과 함께 현대수필의 개척자로 꼽힌다. "사람의 일생은 기쁨과 슬픔을 경위로 하여 짜 가는 한 조각의 비단 일 것 같다"고 시작하는 대표작 ‘슬픔에 관하여’는 슬픔을 극복하고 초월하려는 의지를 잘 드러낸 명수필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고인은 가족계획협회장, 한국유기농업협회장, 대한적십자사 중앙위원 등을 역임하며 사회에 기여해 국민훈장 동백장(76년)을 수상했다. 1985년 한국무궁화연구회를 창립, 무궁화연구 및 보급에도 힘을 써 새품종을 개발, 처음으로 한국명의 무궁화 이름을 학술지에 올렸다. 또 1991년에는 거액의 사재를 털어 자신의 호를 딴 성천문화재단을 설립, 새로운 정신운동의 방향을 제시, 그 공로로 도산인상(2000년)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인걸(성천문화재단 이사)씨 등 1남3녀. 발인은 11월1일 오전8시 장지는 대전국립묘지. 연락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02) 760-2091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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