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강 둔치 매점 아저씨들과 친해졌다는 봉준호(35) 감독. 여의도 지구의 한 매점 주인과는 가끔 맥주도 마시는 사이가 됐다. 매점 운영실태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덤으로 들었다.둔치에 늘어선 컨테이너 박스 매점 하나당 운영권은 2팀이 가지고 있고 2인1조, 1일2교대 형식으로 운영된다. 전두환 정권 당시 한강변을 시멘트로 덮어 버리고 상계동 철거민들에게 보상으로 매점 운영권을 줬다. 나이 든 매점 주인들은 대부분 당시 상계동에서 쫓겨난 이들이다. 사람이 몰려 드는 건 주말에 반짝. 그 밖의 시간, 한강변 매점은 서울 안에서 가장 썰렁하고 나른하고 따분한 곳이다. 매점에 대해 이리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은 무슨 사연일까? "따분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에게 급격한 재앙이 몰려온다면 어떻게 될까… 극과 극을 오가는 거죠."
봉준호 감독의 차기작 ‘괴물’(가제)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꼼꼼하기로 유명한 그가 수 많은 매점 주인들을 인터뷰하고 다닌 것도 그 때문이다. 작품의 가제가 ‘괴물’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말이 많다. " ‘살인의 추억’ 잘 되니 엄청난 예산의 영화 만들려는 거 아니냐고도 하고. 어떤 기사에서는 한강물이 범람하고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그런 영화라고 썼던데. 흐흐. 아닙니다. 전작과 전혀 상관없이 2001년 무렵부터 이미 머리 속에 있었죠. 한국적인 괴물영화를 해보자 생각하고 ‘살인의 추억’ 작업할 때도 틈틈이 준비했던 걸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화가 이처럼 화제가 되는 일도 드물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지닌 지명도 때문이다. 그가 괴물의 환영을 본 건 고등학교 시절. 그는 강변에 늘어선 넓은 평형대 아파트 틈새로 한강이 삐죽이 보이는 아파트(그의 표현에 의하면)에 살았다. 어느 날 교각 위로 기어 오르는 괴물의 형상을 보았다. 환상이었을 것이다. 그 때 본 괴물의 모습은 따분한 이미지로 남아 있는 한강변 매점과 겹쳐져 영화 ‘괴물’의 얼개가 그려졌다.
물론 ‘고질라’ 같은 괴물영화의 클리셰들이 삽입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괴물보다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한다. 주인공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괴물에 맞서 싸워야 하는 서민들이다. 컴퓨터그래픽은 ‘반지의 제왕’ 작업을 했던 뉴질랜드 웨타 스튜디오에서 맡을 예정. 스튜디오 관계자들은 한강 다리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도심 한 가운데 놓인 폭이 넓은 강, 그 위에 놓인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대형 하수구 등이 매우 괴기하고 엽기적이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 들어보니 네 스타일의 영화가 나오겠구나’라고 말한다. "내 스타일이라…" 잠깐 그 말을 되새기던 그는 "30대는 잘 하는 것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마흔 넘어 데뷔하는 이도 있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쉰 살이 넘어 ‘현기증’ ‘싸이코’ 같은 명작을 만들어내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아직 저의 스타일을 말하기는 이르고, 30대에 한 4편은 더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그동안 내가 정말 잘 하는 것, 저의 스타일을 찾겠죠." ‘괴물’도 그 과정에 있는 작품일 것이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